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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4세기 몽골제국 勅令制度 硏究
A Study on the Imperial Order System in the Mongol Empire from the 13th to 14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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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석환
Advisor
김호동
Issue Date
2019-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몽골제국칙령제도(勅令制度)자를릭(jarligh)성지(聖旨)조서(詔書)몽문직역체(蒙文直譯體)인장(印章)제국적 제도(帝國的 制度)
Description
학위논문(박사)--서울대학교 대학원 :인문대학 동양사학과,2019. 8. 김호동.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how the Mongols adopted and used the imperial order system, and its features. Chinggis Khan unified the pastoral nomadic tribes of the Mongol Plain in 1206. Afterwards, the Mongol Empire rapidly expanded its territories, and it incorporated ethnically and culturally diverse people. The old traditional command system of the Mongols was not sufficient to rule them efficiently. Therefore, Chinggis Khan introduced the imperial order system based on letters and documents, which were unfamiliar to the Mongols.
Although the imperial order system was originated from the sedentary culture, it became an important way for the Great Khan to wield his power and govern his state. Consequently, the Great Khan and the ruling group did not leave the management of the imperial order system absolutely in the hands of sedentary subjects, but they actively participated in it. Above all, the Great Khan selected the most appropriate script and language to write his edict to have his recipients understand it without errors. First, his original edicts were written in Uyghur-Mongolian script, and then, it was translated into recipients scripts and languages. The original document and the translated one were usually both given to them. High ranking officials who enjoyed the Great Khans confidence oversaw the whole translation procedure. They translated the original edict word by word into other languages, and they checked each sentence and the entire text repeatedly to avoid mistranslation. Afterwards, the Great Khans seal was put to the final draft for its authenticity. Also, ulugh bitikchi, great scribe, used to countersign on it. The original edict or its copy was stored for future reference.
When a new khan ascended the throne, he decided the validity of the previous khans edicts. A new khan recognized them considering his personal and political relationship with previous khans, or they refused to accept them. Ögedei and Güyük absolutely validated those edicts, because they acknowledged their predecessors great authority and were related by blood with them. Also, they emphasized the continuity between the previous regime and their own. However, Möngke, the 4th Great Khan, was descended from Tolui, and he could establish his power by denying Güyüks reign. Therefore, he did not accept edicts issued by former Great Khans, but he validated some of them selectively for his own interest.
We can find the considerable similarity in the structure of the Great Khans imperial orders through sources. This structure had been standardized gradually since the time of Chinggis Khan. Furthermore, it could be found not only in the original Uyghur-Mongolian decrees, but also in other ones written in diverse letters and languages as well. The earliest case to show the complete structure is the letter sent by Güyük to Pope Innocent Ⅳ. It was comprised of Authorization, Addresser and Order Type, Addressee, Background, Text, Intimidation, and Date. From the regular arrangement of each component and common terminology we can infer that the imperial orders were written in a fixed structure.
Over time, the imperial order system became a tradition and it survived intact in other uluses. The situation was very much the same in Qaan Ulus based on China where sedentary cultures had bloomed from the old days. Keshig delivered the Great Khans oral orders to the specific office to be written, because they were able to understand the Great Khans word and enjoyed his great confidence. Among edicts, there were traditional ones in the Chinese style written by Hanlin Academy. However, through the Mongol Hanlin Academy, other imperial orders in a unique literal translation style were also issued in order to convey the Great Khans word verbatim. Furthermore, Qubilai introduced the 'Phags-pa Script, which was used for the imperial orders. Moreover, in Qaan Ulus, seals were put on edicts as well. Then, those decrees were stored for the future. Although some changes occurred in the structure of the imperial order, they could be regarded as a transformation of the existing tradition, and the basic structure remained as it was.
Meanwhile, the imperial order system was very similar in Hülegü Ulus, where it was situated in West Asia with Islamic and Persian culture. Ilkhans, khan of Hülegü Ulus,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process of writing edicts. They checked drafts in person and modified them in case of need. Ilkhans, high ranking amirs, and wazir had to affix their seals on decrees to show that they had responsibilities for issuing them. Furthermore, a compilation of drafts was prepared to secure consistency and efficiency in writing imperial orders. In principle, Ilkhans edicts were written in recipients letters and languages, and they were succeeded by the next Ilkhan on the basis of his personal relationship with the former and the continuity of the power group. Also, the traditional edict structure remained unchanged even if in Arabic, Latin, and Persian. Sometimes the Bible and the Quran were quoted, and a few Mongolian expressions were replaced by Islamic ones. However, the basic structure of Ilkhans imperial order had been invariable until the fall of Hülegü Ulus.
The imperial order system was an essential way to run the Mongol Empire. Thus, the Great khan and his governing group payed particular attention to it. It is possible to find some influences by Uyghur, Chinese, and Islamic cultures, but it had never been changed on how to run and use it from the time of Chinggis Khan. To the Mongols, he was a symbolic person and he became a model to his descendants. Also, the imperial order system initiated by him and developed as time passed was very helpful to govern the Mongol Empire and uluses in it. Therefore, although the imperial order system did not originate from the nomadic culture, we could define it as an imperial institution of the Mongol Empire.
본고는 몽골인들이 勅令制度를 수용하여 어떻게 활용하였고, 그 안에서 확인되는 특징은 무엇인지를 규명한 연구이다. 1206년 칭기스 칸이 몽골 초원의 遊牧世界를 통일한 이후로 몽골제국은 지속적으로 영토를 팽창시켜 나갔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민족적·문화적 배경의 구성원들을 흡수하였다. 그리고 이들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전통적인 명령 전달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칭기스 칸은 文字와 文書에 기반한 勅令制度를 받아들였다.
이후 勅令制度는 대칸이 권력을 행사하고 국가를 통치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따라서 대칸을 비롯한 몽골 통치 집단들은 勅令制度의 운영을 定住民들에게 일임하지 않고 스스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주체적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무엇보다 대칸은 자신의 명령이 정확하게 전달되고 受領人이 오해 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적합한 言語와 文字를 선택하였다. 기본적으로는 위구르字-몽골어로 勅令의 原本을 작성하지만 그것을 다시 受領人의 言語와 文字로 번역하여 함께 하사하였다. 번역 과정은 대칸의 신임을 받는 고위 관료들이 감독하였고, 한 글자 한 글자 번역하고 이어서 문장 및 전체를 반복적으로 확인하여 誤譯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였다. 완성된 勅令에는 印章을 날인하여 신빙성을 보장하였고, 최고 書記인 울룩 비틱치가 勅令을 확인 후 副署하기도 하였다. 또 勅令의 原本 또는 寫本은 후일을 대비하여 보관되기도 하였다.
한편 새로운 대칸이 즉위하면 그는 前代 대칸들이 發令한 勅令에 대하여 그 유효성을 계속 인정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였다. 대칸은 이전 대칸과의 개인적·정치적 관계와 正統性 및 政權의 안정 등을 고려하여 勅令을 계승하기도, 그렇지 않기도 하였다. 우구데이와 구육은 前代 대칸들이 지닌 상징적 권위와 혈연관계로 인하여 옛 정권과의 연속성을 강조하였기에 적극적으로 勅令을 계승하였다. 그러나 4대 대칸인 뭉케는 이전과 달리 톨루이家 출신이었고 구육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확립할 수 있었기 때문에 前代 대칸들의 勅令들 중 일부만 선택적으로 수용하였다.
현재 實物史料 및 文獻史料를 통해 확인 가능한 대칸들의 勅令은 구조적으로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 이러한 구조는 칭기스 칸 시기부터 시작하여 이후 대칸들을 거치면서 서서히 정형화되었다. 게다가 다양한 言語 및 文字로 작성된 勅令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구육이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에게 보낸 書信은 완비된 구조를 보여주는 가장 이른 시기의 사례로서 권한부여 - 發令者 및 命令文 유형 - 명령의 대상자 - 배경 - 명령내용 - 위협 - 일시 등의 구성요소로 세분할 수 있다. 각 요소들의 규칙적인 배열과 표현의 유사성을 통해 대칸의 勅令은 결코 임의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 고정된 구조를 준수하여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칭기스 칸부터 뭉케에 이르는 시기 동안 勅令制度는 하나의 傳統이 되었다. 그리고 몽골제국 초기의 勅令制度는 이후 각 울루스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古來로 定住文化가 번창한 中國을 주요 세력 근거지로 한 쿠빌라이 이후 카안 울루스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대칸의 口頭命令은 케식에 의해 勅令 작성기관에 전달되었는데, 그들은 대칸의 말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문화적 親緣性을 가졌고 대칸의 신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칸의 勅令 중에는 翰林院에서 작성하는 전형적인 漢文詔書들도 있었으나, 蒙古翰林院에서는 대칸의 말을 그대로 옮긴 蒙文直譯體 聖旨들을 작성하였다. 또 쿠빌라이는 파스파字를 창제하여 자신의 말은 물론, 주요 上奏들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이해하고자 하였고 그 사용 범위를 점차 확대해나갔다. 뿐만 아니라 카안 울루스에서도 여전히 勅令의 신빙성 보장을 위해 印章이 사용되었고, 勅令은 추후 확인 및 참고를 위해 보관되었다. 칸의 말을 옮긴 聖旨(jarligh)의 구조도 기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새롭게 도입된 일부 변화 역시 기존 傳統의 變容이었다.
한편 이슬람·페르시아 문화가 번성하였던 서아시아 일대에 위치하였던 훌레구 울루스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였다. 훌레구 울루스의 칸, 즉 일칸들은 勅令 작성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勅令의 草稿를 직접 확인하고 수정하였으며, 자신을 비롯하여 고위 아미르 및 바지르 등이 印章을 날인하게 하여 해당 勅令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였다. 또 勅令의 草案 모음집을 마련하여 勅令 발행의 일관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일칸의 勅令도 受領人이 이해할 수 있는 言語와 文字로 작성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며, 前代 일칸과의 관계 및 권력집단의 연속성 등에 따라 勅令의 계승 여부가 결정되었다. 구조적인 측면에서도 어떠한 言語 및 文字로 작성되더라도 전통적인 구조를 준수하였다. 성경이나 꾸란의 구절이 인용되기도 하고, 일부 표현들이 이슬람적인 것들로 대체되기도 하였으나 기본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勅令制度는 몽골제국이 운영되는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대칸을 비롯한 통치 집단들은 줄곧 주체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몽골제국의 勅令制度에는 위구르와 中國, 그리고 이슬람 등 다양한 문화요소가 확인되지만 勅令制度를 운용하는 기본 방식은 몽골제국 초기에 확립된 이래로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몽골제국의 勅令制度는 칭기스 칸이라는 상징적인 존재에 의해 형성된 일종의 典範이자, 넓게는 제국 전체, 작게는 각 울루스를 통치하는 데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勅令制度가 비록 遊牧文化에서 기원한 것은 아니지만 몽골제국을 관통하는 소위 帝國的 制度의 하나로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62334

http://dcollection.snu.ac.kr/common/orgView/000000157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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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Asian History (동양사학과)Theses (Ph.D. / Sc.D._동양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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