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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 소설의 서사 구성 원리로서의 감각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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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편정인

Advisor
김종욱
Issue Date
2020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Description
학위논문(석사)--서울대학교 대학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2020. 2. 김종욱.
Abstract
본고는 오정희 소설에서 감각이 서사의 주된 구성 원리임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인간의 세계 인식은 기본적으로 감각을 통해 촉발된다. 감각 없이 태어나 감각 없이 자라는 인간은 없다. 소설 속 인물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소설이 감각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몸의 감각을 이성에 대립하는 저급한 것으로 취급하고 의도적인 무관심의 태도를 취해 왔기 때문이다. 마치 이 모든 세계가 내 몸의 외피에 닿지 않고 바로 대뇌 피질에 전기적 신호로 투사되는 것처럼, 우리는 몸을 배제한 이성, 정신이 걸어 다니는 소설에 익숙해져 있다. 이러한 소설적 관습 속에서 몸의 감각에 대한 묘사는 인물의 사유와는 상관이 없는, 서사를 지연시킬 뿐인 장식적 이미지로 치부되어 왔다. 감각이 높은 위상을 차지하는 오정희 소설에 대해 이미지, 미학성에 경사되어 있는 시적 소설이라는 평가가 이루어진 이유도 감각을 서사의 진행에 방해가 되는 장식이나 장애물 정도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고는 오정희 소설이 이전의 소설사가 지워버린 감각하는 인간을 전면에 내세우며, 감각이 서사의 주된 구성 원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텍스트라고 본다. 그의 여성 인물이 가부장제 내에서 겪는 억압과 그 억압에 저항하는 방식은 철저히 감각을 경유해 드러나며, 감각이 서사에 깊이 관여하는 요소임을 부정할 수 없게 한다. 인물들은 각기 저마다의 감각적 전략을 지니고 이 세계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따라서 오정희 소설에서 인물이 드러내는 감각은 이야기의 기승전결 및 인과관계에 따라 적절히 배열, 조직되어 서사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내적 질서로 기능하며, 서사를 구성하는 하나의 원리가 된다.
본고는 크게 2장과 3장으로 구성된다. 자아가 맞닥뜨리는 성의 변화를 통시적으로 보는 관점에서 2장에서는 미성년, 3장에서는 성인 여성의 서사를 다루었다. 2장에서는 유소년기의 여성 자아가 겪는 성적인 성장 과정이 감각 질서의 재구조화를 통해 이루어지며, 하나의 통과제의로 기능함을 밝힌다. 2.1장에서는 식욕으로 표상되는 입에 머물러있던 유년기의 감각이 자궁과 질, 생리로 이동하며, 가부장제 내에서 자기의 몸이 출산하는 몸으로 각인 될 것에 대한 예감과 거부반응이 다시 감각을 통해 드러남을 확인한다. 주변 여자 어른들의 삶을 통해 성에 대해 이미 알 건 다 아는 오정희의 유년 자아에게 성장은 앎이라는 지식의 획득이 아닌, 몸으로 직접 감각하는 체험의 성장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이의 성장은 자꾸만 도래하는 낯선 세계와 관계 맺기 위해 과거의 감각들을 버리거나 새로이 재편하는 능동적인 과정이며, 오정희의 성장 서사는 누구보다 치열하고 처절하게 성 정체성을 획득하는 여자아이들의 감각의 서사가 된다.
2.2장에서는 다산하는 어머니로부터 생긴 섹스에 대한 혐오를 허물고, 쾌락(만)을 위한 섹스를 향해 몸을 여는 청소년기의 감각을 살펴보았다. 나와 완구점 여인의 동성애적 겹쳐짐은 남근이성애체제가 공고히 해온 삽입 섹스의 규제에서 벗어나 순수한 쾌락과 상호 밀착을 위한 새로운 섹스의 감각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러나 가부장제는 쾌락만을 위한 여성의 능동적인 섹스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어둠 속 만지는 쾌락과 밝음 속 보는 수치 사이에서 관능과 혐오를 동시에 경험한다. 따라서 나의 사춘기는 다가오는 상징계의 빛을 감지하면서도 어둠 속 만지는 쾌락을 욕망하는 감각의 길항 속에 놓이게 된다.
3장에서는 가부장적 성 역할을 보다 강하게 요구받는 성인 여성들이 다양한 감각적 전략을 통해 가부장적 질서를 교란하는 양상을 확인한다. 3.1장에서는 재생산에 실패하고 사회로부터 유폐된 여성이 시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전유·활용하여 세계와 관계 맺는 양상을 살펴본다. 이들은 미학과 과학을 동시에 성취하는 새로운 시선을 구축하고, 의도적인 환시를 통해 염원하지만 닿을 수 없는 대상을 봄으로써 만진다. 또한 기존의 시선이 지닌 담론적 성격을 최대한 배제한 감각하는 눈으로 대상을 소유 아닌 향유한다. 이들 여성 시선 주체는 출산하는 몸으로서가 아닌 그저 자기 자신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눈을 굴리며 자신과의 화해와 불가능한 속죄를 향해 나아간다.
3.2장에서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기억하고 극복하는 일이 타자와 나 사이의 거리를 삭제하는 촉각, 접촉하는 온기를 통해 이루어짐을 본다. 지워버린 아이를 찾아 헤매는 꿈속에서의 방황은 아이와의 직접적인 접촉, 온기의 교류를 위한 여정이며, 죽어버린 어머니의 이미지와 음성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은 결국 타인의 투명한 열기이다. 과거의 시간을 활자, 이미지, 음성으로 저장하는 시청각 위주의 기록 체계는 아버지의 법에 의한 죄책감, 단죄의 칼날로만 작용할 뿐이다. 모든 감각 중 유일하게 대상이 3차원 입체임을 증명하며, 타자와 내가 지금, 여기,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게 하는 촉각은 말뿐인 사랑의 허위를 고발하며 사랑의 계기를 새롭게 마련한다.
3.3장에서는 재생산에 성공하고 가정을 이룬 어머니들이 혼잣말과 소리 내기라는 청각적 방법을 통하여 잃어버린 성과 사랑, 꿈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살펴본다. 끊임없이 낯선 청각을 일으키는 것은 어딘가에 안주하는 것, 길들여지는 것을 거부하며 자기를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모성과 반—모성, 성욕에 대한 혐오와 갈망 사이에서 분열증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어머니들은 한 편의 일인극과도 같은 혼잣말을 통해 말하는 나의 표출과 듣는 나를 향한 전달을 동시에 수행한다. 따라서 이들이 내는 청각적 신호는 적막과 권태에 맞서 스스로의 살아있음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억압된 욕망을 스스로에게 들려주며 모성이라는 단 하나의 성에 용해되기를 경계하는 자기 증명의 일환이다.
이처럼 오정희의 소설 속 인물이 드러내는 감각은 묘사·문체론적 차원, 단편적인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으며 인물의 의식적인 주의가 깃든 능동적 행동이자 서사를 추동하는 사건으로 작용한다. 또한 이들 여성 주체의 감각은 여성만의 성적 특수성으로 환원될 수 없지만, 여성임과 상관없는 감각도 아니다. 여성으로 살아가는 몸들로서의 오정희 소설 속 여성 인물들은 가부장제 내에서 억압당하지만, 그 한계와 상호작용하여 몸의 새로운 감각적 능력을 창출해낸다. 따라서 오정희의 소설은 각인을 체험하는 몸으로서의 감각하는 여성의 서사라 할 수 있다.
Language
kor
URI
http://dcollection.snu.ac.kr/common/orgView/0000001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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