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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70년대 서울의 간선도로변 고층화정책과 맞벽건축 : Policies to Encourage Higher Buildings on Main Streets in Seoul and the Advent of the Join-wall Buildings, 1950s - 1970s : Postwar City Beautification and its Regulatory Means
전후 도시미화를 위한 현실적 수단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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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박일향
Advisor
전봉희
Issue Date
2020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Description
학위논문(박사)--서울대학교 대학원 :공과대학 건축학과,2020. 2. 전봉희.
Abstract
이 연구는 1950년대부터 추진된 서울의 간선도로변 고층화정책과 이를 바탕으로 조성된 도시경관의 전개양상을 연속적인 흐름 속에서 해석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서울의 간선도로변 고층화정책은 현실적인 도시미화의 방안이었다. 전후 1950년대에 일본의 체계를 이어받은 건축법령이 건축물의 최고높이를 규제하고, 서울시의 건축행정요강이 도심 간선도로변의 최저층수를 제한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현대적인 도시는 격자형 도로와 고층건물로 이루어져있어야 한다는 도시미관에 대한 생각과, 시가지가 파괴되고 저층 목조건물이 절대다수를 점했던 전후 서울에서 시가지 전반의 고층화를 단시일 내에 이룰 수는 없다는 현실적인 조건이 반영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장 눈에 두드러지는 간선도로변에라도 고층건물을 짓도록 제한하는 것이 도시미관을 향상시키는 길이라는 관념은 건축행정요강뿐만 아니라 미관지구제도에도 반복적으로 투영되었다. 1970년 이후 건축법은 용도지역별 건축물의 최대용적을, 미관지구조례는 약 1990년대까지 서울 전역의 간선도로변 건축물의 최소규모를 제한하는 것으로 정착했다.
그리고 최저층수는 1950년대부터 가장 기본적인 서울 간선도로변 미화의 기준이 되었다. 건축행정요강은 용도지역과 전면도로 폭에 따른 최저층수를 제시함으로써, 특정 도로가 아닌 도심지에 적용시킬 수 있는 보편적인 고층화의 지침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토지의 고도이용과 도시 방화대 구축의 필요성이 1950년대 일련의 도로변 건물에 대한 최저높이 제한의 주요한 이유였다. 이에 비해 서울에서는 건축물의 높이가 도시미관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반영되어 있었다. 그리고 서울시는 1960년대에도 고층화의 수단으로서 최저층수의 제한을 지속적으로 채택했다. 이후 1970년에 제정된 미관지구제도를 통해 최저층수 제한의 범위를 도심 간선도로변이라는 제한된 지역이 아닌, 확장된 서울 행정구역 전체에까지 적용시켰다. 여기에서 층수로 미관을 조절하는 방식은 유지되었지만, 전후 건축행정요강이 최대한 조속한 고층화를 강제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미관지구제도에서는 종별로 최저와 최고층수를 함께 제한하는 등 간선도로변 건축물의 적정규모에 대한 고민으로 진화해갔다. 그리고 미관지구제도는 서울 전역의 보편적 가로경관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1950-1960년대에 세워진 맞벽건축은 전후부터 이어져온 간선도로변 고층화정책의 구체적인 산물이었다. 건축행정요강은 도심 전재복구지역에서 적정 바닥면적을 초월하는 맞벽건축군 건설의 배경이 되었다. 최저층수의 달성을 강조한 건축행정요강은 맞벽건축의 건설을 허용했다. 최저층수의 제한을 받는 모든 지역에 대해, 제정 당시 건축행정요강은 대지경계선으로부터의 이격거리 규정을 예외로 적용했다. 또한 1958년에는 이격거리 제한을 없애고 민법에 의거해 건물을 짓도록 했다. 이는 맞벽건축의 건설을 법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조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맞벽건축은 정부와 토지소유자간의 지향점을 합치시키는 방안이었다. 서울시는 맞벽건축의 건설을 허용함으로써 정돈된 간선도로변 도시미관을 조성할 수 있었다. 당시로서는 고층의 통일적인 입면으로 건설된 맞벽건축군은 전재복구의 상징이 되었다. 한편 토지소유자는 소형필지에서 개발 가능한 건축면적을 맞벽건축을 통해 최대한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나아가 인접건물과 출입구, 계단, 복도를 공유하는 공동건축을 건설함으로써 좁고 세장한 필지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전후 중앙토지구획정리사업지의 맞벽건축은 건축자재와 기술, 자본 등의 한계 속에서 고층건물로서의 완성도를 제대로 갖추지는 못했다. 또한 좁은 대지에서 계단실, 복도, 화장실 등 공용공간을 충분히 확보한 건물을 짓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공지가 마련되지 않은 가구 안에 2-3켜로 구획된 개별 필지에서의 맞벽건축의 건설은, 초고밀도의 가구가 형성되는 원인이 되었다. 채광, 통풍, 피난로 등 이격거리를 확보함으로써 생기는 생활환경의 이점을 포기해야했고, 건물 후면으로 활용하기 어려운 최소한의 공지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
한편 1960년대 후반에 도심에 집중적으로 건설된 고층건물과 간선도로변 상가아파트는 맞벽건축이 대형·고층화된 유형으로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우선 일정한 높이의 연속된 가로입면을 형성함으로써 도로이면을 차폐했던 맞벽건축의 도시미화적 역할은 상가아파트에서 극대화되었다. 상가아파트에는 간선도로변 고층화를 통해 도시를 미화시키고 토지를 고도로 이용하고자했던 서울시의 목표가 가장 극명하게 반영되어있었다. 그리고 고층화의 경쟁 속에서 지어진 도심 고층건물의 사례는, 이전 시대에 비해 대형필지에 건설되면서 실내를 효율적으로 계획할 수 있을 만큼의 건축면적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맞벽건축이라는 관습에 따르면서도 주변 건물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층수로 지어지면서, 기존 간선도로변 건축물이 만들어낸 통일적인 질서에서 크게 벗어났다. 맞벽건축의 규모는 경제 성장, 건설기술 발달과 함께 도심 일부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확장되었고 극심한 공지 부족의 문제를 야기했다. 그리고 1970년대 일련의 건축법 개정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후 1970년대 미관지구제도와 개정 건축법에 의해 간선도로변 맞벽건축의 건설은 소강상태에 이르게 되었고, 측면에 공지를 둔 일정높이의 건축물이 서울의 간선도로변 경관으로 새롭게 정착했다.
1970년대 이후 간선도로변 경관의 가이드라인이 되었던 미관지구와 건축법의 내용과 성격은 1990년대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1990년대 말에 모호한 종별 구분, 과도한 고층화를 막지 못하는 최소규모의 제한, 가로경관의 다양성 침해 등 미관지구제도의 문제점이 대두되며 제도개선으로 이어졌다. 결국 1950년대부터 간선도로변 미관의 기준이 되었던 최저층수의 제한은 2001년에 미관지구제도에서 삭제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전후부터 이어져온 도시미관이라는 개념의 전환을 의미할 수 있다. 긴 생명력을 유지했던 최저높이 제한을 통한 고층화는 더 이상 도시개발과 도시미화에서 최선의 가치가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간선도로변 고층화정책의 전개양상은 서울의 도시화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 즉, 반세기가량 성장 가도를 달려온 서울이 도시화의 성숙단계에 들어섰음을 반증해주고 있다.
이와 동시에 맞벽건축은 도시미화의 수단이자, 법적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대지에서의 개발을 활성화시키는 수단으로서 새롭게 해석되기 시작했다. 간선도로변 고층화는 건축행정요강에서 미관지구제도에 이르기까지 서울을 현대도시로 만들기 위한 도시미화의 기본적인 지침이었다. 이러한 기조 하에 건설된 전후 맞벽건축은 미개발된 도로이면을 가리고 정돈된 가로입면을 조성하는 역할을 수행했지만, 또한 여러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도시미관의 재정립이 요구되는 현 시점에서, 과거 맞벽건축군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 시대에 적합한 맞벽건축이 무엇인가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analyze the development of the policies to encourage higher buildings on the main streets in Seoul from the 1950s to the 1970s. The Seoul Government had tried to construct higher buildings on the main streets as a means of city beautification. City Planning Ordinance that inherited Japanese Building Acts had regulated the maximum height of the buildings since 1934. And the Seoul Government had limited the minimum building floors of roadside buildings through local regulations after the Korean War. It reflected the conception that a modern city should consist of grid streets and high-rise buildings. But on condition that the city was destroyed by the war and most of the remaining buildings were low-rise wooden structures, the construction of high-rise all over the city could not be achieved in a short time. Therefore the restriction on the height of roadside buildings was considered as a realistic alternative. And this conception was repeatedly projected on the Aesthetic district ordinance. Since 1970, the Building Acts has limited the maximum volume of buildings through floor area ratio, and the Aesthetic district ordinance limited the minimum size of buildings on the main streets.
And the minimum building floors had become the most basic standard for beautifying main streets in Seoul since the 1950s. Seoul Building Guidelines was applied not to the specific streets but to all over the downtown area with the minimum building floors according to the use zoning and the width of the front road. The minimum height regulation was imposed in order to make high-density land use and to build fire belts in the 1950s in Japan. In comparison, the conception that the building height has a very important effect on the urban scape was reflected more strongly on the institutions in Seoul. And even in the 1960s, the Seoul Government continuously adopted a limit on the minimum building floors as a means of high-rise. And the Seoul Government expanded the range of application of the minimum building floors to the entire administrative district of Seoul through the Aesthetic district ordinance since 1970. If Seoul Building Guidelines was to force the construction of higher buildings as soon as possible, the Aesthetic district ordinance was to suggest the proper scale of buildings along the main streets with the restriction of minimum and maximum building floors.
The Join-wall buildings, mainly built in the 1950s and 1960s, were the specific results of the policies on the main streets. Seoul Building Guidelines was the background of the construction of the Join-wall buildings at the rehabilitation area which exceeded the proper floor area. The Guidelines allowed the construction of the Join-wall buildings, while emphasizing the importance of the achievement of the minimum building floors. The construction of this architectural type was a way to harmonize the aim of the government and landowners. The government was able to create well-organized cityscape along the main streets. The unified higher buildings as compared with the usual wooden one storied buildings, became a symbol of the restoration of the war. Meanwhile, landowners were able to secure the maximum amount of building space on a small plot of land. Furthermore, They could overcome the limitation of narrow plots by the construction of the joint buildings that share the entrances, staircases and corridors with adjacent buildings.
However, the scale of the Join-wall buildings greatly expanded in the late 1960s, causing an extreme lack of open area. And it became the direct cause of a series of law revisions in the 1970s. According to the Aesthetic district ordinance and the revised Building Acts, the Join-wall Buildings became the architectural type of the previous era. Alternatively, the buildings with the certain heights and the vacant area on the side have been newly constructed.
The Aesthetic district ordinance and Building Acts marked a new turning point in the 1990s. With the emergence of problems about the ordinance, the government began to improve the system in the late 1990s. Eventually, the restrictions on the minimum building floors were removed from the ordinance in 2001. It could mean a shift in the concept of city beautification through encouraging higher buildings on the main streets which has be formed since the postwar period. This also proves that Seoul, which has been on the road to growth for about half a century, is in the mature stage of urbanization.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67578

http://dcollection.snu.ac.kr/common/orgView/000000160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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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Engineering/Engineering Practice School (공과대학/대학원)Dept. of Architecture and Architectural Engineering (건축학과)Theses (Ph.D. / Sc.D._건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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