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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Development Education by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and its Commission on the Churches Participation in Development from 1966 to 1991
세계교회협의회 개발국의 개발교육에 관한 연구, 1966~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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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Rebekah Hwajhin Lee
Advisor
유성상
Issue Date
2020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Description
학위논문(박사)--서울대학교 대학원 :사범대학 협동과정 글로벌교육협력전공,2020. 2. 유성상.
Abstract
본 연구는 1966년부터 1991년까지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 개발국(Commission on the Churches' Participation in Development, CCPD 교회개발참여위원회)의 개발교육 사례를 조사하여 조직의 가치, 개발관, 개발교육 접근방식이 어떻게 형성되고 협상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개발교육에 관여하는 종교기반단체(faith-based organization, FBO)로서의 세계교회협의회의 관점을 연구하여 개발교육 분야와 개발교육에 관여하는 종교기반단체에 시사점을 준다.
연구 질문은 다음과 같다: 1966년과 1991년 사이에 세계교회협의회와 개발국은 어떻게 개발 및 개발교육을 개념화하였는가? 하위 질문은 다음과 같다. 세계교회협의회에서 비판적개발교육의 출현에 기여한 내외적 요인은 무엇인가? 어떤 요인이 개발 및 개발교육에 대한 관점의 시기적 변화를 초래했는가? 연구 분석의 개념적 틀을 구축하기 위해 비정부기구(NGO)와 종교기반단체 연구를 참고하였고 개발교육의 역사와 아놀드(1988)와 크라우스(2010의 분류 틀을 분석하여 세계교회협의회와 개발국의 사례에 적용할 개념적 틀을 형성하였다. 개발협력에 대한 관점은 자선(charity),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 해방(liberation)으로 확립하였고, 개발교육에 대한 접근방식은 홍보 및 기금조성(promotion and fundraising), 인식 제고(awareness raising), 실천 동원(mobilization), 임파워먼트(empowerment)로 하였다. 이 분석틀을 기반으로 자금, 프로젝트, 정치적 입장, 파트너십, 교육에 관한 다섯 가지 핵심 질문을 도출하였다. 연구 방법으로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아카이브와 도서관에서 1차 및 2차 문헌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하였다.
1966년부터 1970년까지의 1단계에서 세계교회협의회는 경제 성장이라는 개발협력 분야의 주류를 따랐다. 구조적 변화가 필요한 반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의 상호의존과 조화를 전제하였다. 세계교회협의회는 교회와 국가들에게 개발원조를 늘리고 예산의 일부를 기부할 것을 장려했다. 개발교육 사무국은 1968년 세계교회협의회에 결성되어 개발 이슈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선진국 시민들을 정치적 캠페인에 참여시키고, 국제개발협력에 금전적 기여를 장려하였다.
1970년부터 1975년까지의 2단계에서는 개발도상국의 교회들이 사회정의, 자립, 경제성장의 원칙에 기초하여 선진국의 교회와 보다 동등한 파트너십을 요구하였고 세계교회협의회의 개발국이 결성되었다. 새롭게 회자되었던 종속 이론, 해방 신학, 그리고 파울로 프레이리의 비판적 페다고지의 영향을 받은 개발국은 곧 해방, 민중 운동, 의식화 원리를 바탕으로 네트워킹, 분권화, 실험 전략을 채택했다. 개발교육은 조화로운 상호의존성보다는 갈등이 불가피한 해방적 관점에 바탕을 두었다. 개발교육활동으로는 선진국의 교회 관련 개발협력단체의 개발교육분과 또는 정치 행동 집단과 협력하여 워크샵, 또는 캠페인을 개최하였고 이런 협력 단체에 개발교육 기금을 지원하였다.
1975년부터 1981년까지 3단계에서는 세계교회협의회와 개발국에서 개발 협력에 대한 신학 연구와 회원 교회와의 제휴에 초점을 맞추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정의롭고, 참여가 보장되며, 지속가능한 사회”(Just, Participatory, and Sustainable Society, JPSS)의 비전을 세우고 냉전시기 비동맹국가들의 신국제경제질서를 지원하였다. 1970년대 후반 개발국의 "가난한 자들의 교회"연구는 교회의 발전 참여의 신학적 토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협의회의 교회들은 개발국과 협의회의 정치적 행동을 강조하는 개발협력과 개발교육에 반대했다. 또한 개발국은 선진국 시민들이 개발 이슈의 인식에서 개발을 위한 행동을 취하도록 장려하고, 글로벌 이슈와 지역적 관심사를 연결하며, 자선의식에 호소하지 않고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문제와도 씨름했다. 이러한 문제들은 개발국과 개발교육 협력단체들이 개발교육의 교육 과정을 성찰하여 기존 유형을 식별하고, 에큐메니컬 교육의 모델을 고안하도록 동기를 부여했다. 에큐메니컬 교육은 해방과 의식화의 비판적 모델과 문화 간 이해와 글로벌 인식의 유연한 모델을 통합했다. 그 시기에 예산 삭감, 조직적 중복, 그리고 개발교육을 기독교교육과 교차시키는 요구를 감안하여 1981년에 개발교육은 개발국과 교육국의 공동 사업으로 재정립되었다.
1981년부터 1991년 사이의 4단계에서는 세계적 흐름에 반응하여 개발교육이 새롭게 “정의, 평화, 창조세계의 보전(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reation, JPIC)를 위한 교육”으로 불렸다. 정의, 평화, 창조세계의 보전이라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중점 아젠다는 지역교회와 시민운동의 다양한 문화와 요구에 답하는 새로운 사회윤리적 비전이었다. 이 시기 개발국은 계속해서 활동가적 특성을 유지했지만 이 전 시기보다는 제도적인 교회를 통해 더 많은 일을 했다. 해방과 상호의존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 에큐메니컬 교육에 편입된 개발교육은 정의, 평화, 창조세계의 보전 지역 워크숍에서 대화를 통해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를 화해시키는 노력을 하였다. 개발교육을 통한 자금조달과 인지도를 높이는 노력과 비판적 분석을 통한 임파워먼트(empowerment)도 계속되었다.
세계교회협의회와 개발국의 사례는 기독교 에큐메니컬 단체가 어떻게 국제개발협력을 구상하고 개발교육을 촉진했는지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개발과 개발교육의 원리를 타협하지 않으며 기금을 모으려 애썼다. 그리고 일시적인 봉사 프로젝트를 제공하기 보다는 개발도상국가 협력단체들과 네트워킹을 통해 교육과 시민 변호를 위한 역할을 맡았다. 또한 사회 정의와 구조적 변화를 위한 정치 교육과 행동을 장려했지만, 해방신학과 비판적 페다고지를 마르크스주의와 동일시하는 교회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개발국은 개발교육을 주로 추진했던 선진국 단체들과의 관계보다 개발도상국의 단체들의 입장에서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개발국이 강조했던 사회적행동은 점차 신학과 교육에 대한 성찰로 보완되었다. 개발교육은 결국 세계교회협의회의 다른 교육 분과와 결합하여 에큐메니컬 교육에 통합되었다. 이것은 교육학적인 성찰로서 개발교육의 진전이었지만 정치적 행동 요소와는 분리되는 결과를 낳았다. 에큐메니컬 교육에서 강조하는 화해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의 고충을 충분히 듣고 해결하여 평화와 일치에 이르는 것이었으나 1980년대와 1990년대 전지구적 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대두되면서 에큐메니컬 교육은 갈등을 드러내는 비판적 모델 보다는 조화를 위한 교육이 되었다.
세계교회협의회와 개발국의 개발교육 경험은 몇 가지 함의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기금 모금은 계속해서 개발교육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개발교육의 도구로써 기금 모금은 투명하고 비판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또한 개발교육은 비정부기구의 하나의 개발협력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연대·상호학습의 파트너십을 규정하는 모드로써 단체의 중심적 요소가 되어야 한다. 비판적 개발교육은 또한 정치적 행동 차원을 포함해야 하며, 특히 비정부기구와 종교기반단체를 통한 비정규 교육 분야에서는 더욱 정치행동 차원을 강조해야 한다. 특히 기독교 종교기반단체에게 있어 행동과 성찰의 일치를 갖춘 비판적 개발교육은 이러한 사회 정치적 변혁을 위한 개발협력의 토대가 되며 교회의 개혁을 촉진한다.
This study examines the case of development education by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WCC) primarily through the Commission on the Churches’ Participation in Development (CCPD) between 1966 and 1991 to show how the organization’s values, development perspectives, and development education approaches were shaped and negotiated through different phases. The WCC’s place as an international faith-based development organization (FBO) involved in development education will be examined to find potential implications for both the development education sector and the faith-based organizations approaching development education.
The main research question is formulated as follows: between 1966 and 1991, how did the WCC and its subunit CCPD conceptualize development and development education? Sub-questions include: What were some internal and external factors that contributed to the emergence of critical pedagogical development education in the WCC? What factors led to shifts in perspectives on development and development education through different phases? The research questions are answered by examining the history of the WCC and the CCPD and analyzing based on conceptual frameworks drawn from literature review on development education by non-government organizations (NGOs). Categorizations of practices in development education by Arnold (1988) and Krause (2010) were examined to form a conceptual framework with which to examine the WCC’s development education. The perspectives on development cooperation were identified as charity, interdependence, and liberation, and the approaches to development education were identified as public relations and fundraising, awareness raising, mobilization, and empowerment. With the framework five key questions were also formulated to analyze the findings on issues of funding, service projects, political stance, partnership with the North and the South, and education as process and outcome.
Archival documentary materials were gathered as primary and secondary sources to examine the organization’s values based on theology and ecumenical social thought, along with its development perspectives and development education approaches in four different phases. The phases are contextualized through reviews of literature on development education by NGOs in those time periods. Internal and external factors that contributed to shifts in perspectives and approaches were considered.
In the first phase from 1966 to 1970, the WCC followed the mainstream perception of development as economic growth. While structural change was necessary, it assumed a harmony of interests between the North and the South. The WCC called for churches and nations to increase development assistance and contribute a share of their budget. The development education secretariat was formed in the WCC in 1968 to raise awareness of development issues, and motivate Northern constituents to participate in political campaigns and encourage monetary contribution.
In the second phase from 1970 to 1975, the CCPD was formed based on the requests by the churches in the South for a more equal development partnership with the churches in the North, based on the principles of social justice, self-reliance, and economic growth. Influenced by the emerging dependency theory, liberation theology, and critical pedagogy by Paulo Freire, the CCPD soon incorporated principles of liberation, people’s movement, and conscientization, and adopted the strategy of networking, decentralization, and experimentation. Development education was based on a conflict perspective of liberation rather than harmonious interdependence, and was practiced by coordinating visitations, workshops, and consultations for development education partners and political action groups, primarily in the North. Fundraising in the North was to also serve as an instrument for development education.
From 1975 to 1981 in the third phase, the WCC and the CCPD supplemented their actions with theological studies, and more specifically focused on partnering with member churches. Development education became even more essential to the CCPD’s strategy to support the churches’ own reflections. With a new formulation of an ideal society as just, participatory, and sustainable, the WCC sought to support the non-aligned nations in the Cold War global structure with their proposal for a new international economic order. Based on the perspective on development as liberation, the CCPD sought to assume a catalytic role within the WCC to challenge the Council and the churches to question the status quo. The CCPD study on “The Church of the Poor” became the foundational theological articulation on the churches’ participation in development. But development education, along with the CCPD and the rest of the Council, encountered resistance from the member churches reluctant to take political action. It was also difficult to move the North’s constituents from awareness to action, to connect global issues with their local concerns, and to raise funding without appealing to a sense of charity. These issues motivated the CCPD and its development education partners to reflect on the pedagogical process of development education and identify several existing models, and come up with a model of ecumenical education. Ecumenical education incorporated both the conflict model of liberation and conscientization, and the softer model of global awareness for intercultural understanding. Partly given budget cuts, organizational overlap, and the demands to cross-fertilize development education with Christian education, the desk was realigned as a joint venture between the CCPD and the Subunit on Education in 1981.
The global context in the fourth phase between 1981 and 1991 changed the character of development education which was now called education for 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reation. The WCC’s priority was to facilitate the conciliar process of justice, peace, and the integrity of creation (JPIC) by responding to various contexts and cultures of the local and regional movements and church groups. The CCPD continued to be activist in character, but became less politically vocal and worked more through the institutional church channels than in the past decade. Development education that was incorporated into ecumenical education based on both the concept of liberation and interdependence was intended to reconcile the oppressor and the oppressed through dialogues in regional JPIC workshops. The fundraising and awareness raising components continued in the CCPD, along with empowerment through critical analysis, though the action component was less highlighted.
The WCC and the CCPD’s experience show how an international ecumenical organization conceived of international development cooperation and promoted critical development education. The Committee tried with difficulty to hold education and fundraising together without compromising on its values. And rather than providing temporary service projects, the Committee embraced its role in education and advocacy through networking with the partners in the South. It also promoted political education and action for social justice and systemic change, but encountered resistance from those reluctant to commit to political action or side with what they equated with Marxism. The CCPD also tried to prioritize participation and input from the marginalized South, but its relationship with various Northern partners with whom the Commission promoted development education was less clear. The CCPD’s emphasis on action was also supplemented by its reflections on theology and pedagogy. Development education was eventually combined with other aspects of education in the WCC and was incorporated into ecumenical education. This advanced pedagogical reflections on development education but resulted in downplaying the critical political action component and separating education from development cooperation in the WCC. The final emphasis on reconciliation in ecumenical education tried to work toward peace and unity while giving due attention to tensions and grievances, but in the general global climate of conservatism and neoliberalism in the 1980s and the 1990s, and the churches’ reluctance to address tensions, the WCC returned to the softer forms of development education.
The WCC and the CCPD’s experience with development education holds several implications. Today fundraising continues to be an instrument of development education. Ways to transparently and critically link both elements must be devised. Specifically, critical development education should also be an essential element in development cooperation and NGOs as not just a program thrust but as a mode that defines partnerships of solidarity and mutual learning. Critical development education should also include a political dimension, especially in the non-formal sectors through NGOs and FBOs. Especially for Christian FBOs, critical development education with its unity of action and reflection should be a foundation for its political activism. Such development education facilitates a way toward the churches and the ecumenical movement’s own renewal.
Language
eng
URI
http://hdl.handle.net/10371/167609

http://dcollection.snu.ac.kr/common/orgView/000000160056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Education (사범대학)Program in Global Education Cooperation (협동과정-글로벌교육협력전공)Theses (Ph.D. / Sc.D._협동과정-글로벌교육협력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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