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

경성 문화시설의 입지적 특성과 사회적 기능에 관한 연구
Locational Characteristics and Social Functions of Cultural Facilities in Gyeongseong(Seoul)

Cited 0 time in Web of 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Authors
김성태
Advisor
권영상
Issue Date
2020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일제 식민지기문화정치근대문화시설입지적 특성사회적 기능도서관극장박물관 및 미술관Japanese RuleModern Cultural FacilitiesLocational CharacteristicSocial FunctionLibraryTheaterPublic HallMuseumArt Gallery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 서울대학교 대학원 : 공과대학 협동과정 도시설계학전공, 2020. 8. 권영상.
Abstract
오늘날의 생활 방식이 구축된 시기는 불과 100여 년 전으로,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재편한 근대적 공간은 개항기와 일제 식민지기를 거치며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되었다. ‘왜곡된 근대화 과정에서 도입된 문화시설이 당시에도 지금과 같이, 입지를 정하고 동일한 기능을 하는 공간일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본 연구는 일제 식민지기 근대문화시설에 대한 입지적 특성과 시대의 흐름에 따른 사회적 기능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일제 식민지기는 도시 공간과 시설의 핵심, 그리고 우리가 문화시설이라 칭하는 것들의 기원, 공공성, 행정이 탄생한 시기이다. 또한 ‘지금의 시점’에서 연구를 진행해야 하는 이유는 도시 개발이 진행되고 도시재생에 주목하고 있는 현재, 공공 문화시설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공간을 재검토하는 것은 그것이 생성된 지점에서 출발해야하기에 근대에 대한 연구의 성과는 현재적 의미를 지닌다고 판단하였다.
문화란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된 물질적, 정신적 산물로서, 문화시설은 다양한 문화가 생성, 유통, 소비되는 공간이다. 이러한 문화시설은 인간의 정서적 활동에 따른 상호 간의 커뮤니케이션 장소로 규정할 수 있으나, 우리의 전통적 공간과는 다르게 전개되었으며 근대 사회로의 전환기에 두드러져 성장하였다. 일제 식민지기 근대 시설의 도입은 1906년 탁지부건축소의 설립과 함께 시작되었으나, 당시의 시설은 지시(instruction)와 검열(inspection), 통제(control)로 표출되었다. 이는 규율 권력을 발현하기 위한 시설로서, 조선인에 대한 생활을 통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기존 무단통치 체제에서의 근대 시설이 사법, 형행 제도 등 처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문화정치’에서는 동화를 목적으로 교류가 가능한 문화시설이 계획되었다. 문화시설은 조선총독부와 경성의 민중이 일상적으로 만나는 ‘접촉지대’로, 동화의 스펙트럼을 여과없이 볼 수 있는 장소이다. 따라서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설립된 문화시설을 근대 도시계획의 형성과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유용한 대상으로 설정하고, 도시 공간에서 문화시설이 차지하는 사회적 함의를 찾고자 하였다.
연구의 시간적 범위는 1910년부터 전시체제로 전환하는 1937년까지이며, 통치 수단의 변화가 나타나는 1920년을 기점으로 문화정치 전략과 근대문화시설의 형성 및 전개과정을 분석하였다. 연구의 공간적 범위는 당시 경성부의 경계이며, 대상은 근대 사회의 전유물인 시각문화의 공간으로서 도서관, 극장, 박물관을 선정하였다. 도서관은 당시 경성의 모든 도서관 중 전문학교 부설도서관을 제외한 공공과 민간에 의해 설립된 도서관이며, 극장은 지역사회에 미친 영향력, 인지도, 규모 등을 바탕으로 사례를 선정하였다. 박물관은 박람회와 궁궐 내 입지한 전시시설, 그리고 상설 전시공간의 유무를 판단하여 대상을 선정하였다.
일제 식민지기에 설립된 도서관, 극장, 박물관을 중심으로 사례를 분석한 결과, 입지적 관점에서 당시의 문화시설은 이중도시의 경계를 완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 원인으로 첫 번째, 당시의 문화시설은 선진성의 표상으로 경성 곳곳에 설립되었다. 일제 식민지기에 도입된 문화시설은 건축적, 경관적으로 기존 건축과는 다른 모습으로 도심부에 입지하였다. 일제에 의해 도입된 건물은 서구와 동일시하였고 조선의 건축과 ‘구별 짓기’를 통해, 근대성과 선진성으로 표출되었다. 또한 조선 왕실 소유의 토지에 부민관을 건립하고 대한제국의 영역에 경성부립도서관, 조선총독부도서관을 계획하는 등 국가 상징공간에 문화시설을 조성함으로써 공간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자 하였다. 두 번째, 일본인 거류지였던 남촌의 공간 동화로, 선진 문화를 동경하는 조선인을 유입하는 기제로 문화시설이 활용되었다. 각종 근대식 극장과 일제에 의해 설립된 경성공회당은 남촌에 위치하였고, 이러한 시설의 주된 수혜자는 일본인이었다. 조선총독부에 의해 차별적으로 배분된 문화시설은 조선인을 남촌으로 유인하는 소비문화의 공간으로 작동하였으며, 조선인은 선진 문화를 동경하는 민중으로 이곳에서 근대성을 경험하였다. 세 번째, 남촌과 북촌으로 구분되었던 민족 공간이 문화시설을 통해 경계가 희석되었다. 북촌과 남촌은 지배와 저항이라는 식민 권력의 관계 속에 규정되었으나, 경제 권력이 북진함에 따라 영역 구분은 와해되었다. 조선의 경성도서관은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폐관되었고, 탑골공원 주변의 극장도 일본인이 운영하는 등 경제적 수탈과 피식민 국민의 통제를 목적으로 일본인은 공간적 변화를 주도하였다. 민간 부문에서 조선총독부의 영향력 보다는 민족 간의 대립, 경쟁, 동화 과정을 거치면서 그 경계가 허물어졌음을 알 수 있다.
문화시설의 입지적 특성을 종합하면, 일제 식민지기의 경성은 서구의 식민지 도시와는 달리 도시 내부에서 많은 변화를 경험하였다. 경성의 상징과 중심축이 근대식 박물관과 박람회장으로 변화하였으며, 궁궐 내 유휴부지를 활용함으로써 문화시설이 조성되었다. 이는 일본 도쿄의 우에노 지역에 문화시설을 계획함으로써 에도 막부의 이미지를 지우려 했던 일본 메이지 정책과 유사하게 진행되었음을 확인하였고, 당시의 문화시설은 시각적, 사회적으로 신문물 도입의 장소로 인식되어 조선 민중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문화시설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해석으로, 일제 식민지기의 문화시설은 근대 시민으로의 학습 공간으로 활용되었음을 분석하였다. 그 원인으로 첫 번째, 일제는 문화시설을 관 주도의 규율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식민지배의 담론을 전시라는 이벤트로 재현하고 조선과의 비교를 통해 식민지에 대한 규율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한 일제는 대륙 침략의 학술 교두보로서 문화시설을 이용하였다. 도서관에는 일서 위주의 책을 수서하였고 극장과 박물관은 일본인과 조선인의 간극을 형성함과 동시에 전시체제 전쟁에 동참할 국민을 양성하기 위한 장소로 활용하였다. 이처럼 일제는 통치체제 강화를 위해 근대적 규율을 강조하고 문화적 우월성을 확립하고자 문화시설을 활용한 것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조선인의 관점에서 문화시설은 계몽의 장소로서 새로운 계층의 등장 배경이 되었다. 도서관과 박물관은 어린이와 여성을 위한 문화 사업을 진행하였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교육을 지속하였다. 서구 사회와 달리, 우리나라의 식민지적 특성으로 급속하게 진행된 사회교육은 교양과 합리적 이성을 갖기 위한 계몽의 공간으로 문화시설이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일반 민중에게 문화시설은 여가 및 유희의 공간으로 기능하였다. 일제는 조선 왕조의 유적과 근대적 공간을 대비함으로써 조선을 동화하고자 하였지만, 조선의 민중은 이러한 시설을 오락 공간으로 전치하였다. 당시의 문화시설은 근대성의 선전장이라기보다는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유원지에 가까웠으며, 민족으로만 치환되지 않은 유희와 오락의 공간으로서 당시의 문화시설은 인식되었다.
문화시설의 사회적 기능을 종합하면, 관에 의해 도입된 문화시설은 일제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규율 공간으로 규정되었고 사회화를 통해 영구적 지배를 목적으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조선의 민간에서 건립된 문화시설은 지역민들에게 사회교육의 공간으로 역할을 하였고 어린이와 여성이라는 새로운 계층을 성장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일반 민중에게 문화시설은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여가의 장소, 취미생활의 일부로 치환된 것임을 분석하였다.
일제 식민지기는 일반적으로 통치방법에 따라 무단통치, 문화정치, 병참기지화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경복궁에 박람회를 유치하고 각각의 궁궐에 박물관을 조성하는 등 일제에 의한 공간 전치는 식민지 기간 내내 지속되었다. 도서관은 조선교육령 선포 이후, 폐관되었다가 문화정치 이후 다시 등장하여 일제의 공공도서관으로 흡수되었다. 또한 극장은 관제 행사에 이용되는 선전의 장으로 활용되었다. 즉 문화시설의 도입은 일제 식민지기의 시대 구분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음을 분석하였고, 조선과 일제 등의 설립 주체에 의해, 입지적 특성과 사회적 기능이 다르게 나타남을 확인하였다. 서구 사회에서 근대로의 이행은 새로운 공공건축을 통해 문명화 된 도시의 상징으로, 사람들에게 문명의 위대함을 전달하였다. 그러나 식민지를 경험한 우리나라는 주체적 생각이 결여된 채, 서구의 과정과는 상이하게 나타났다. 도시 공간을 임의로 훼손하고 문화시설을 건립한 일제의 행위는 동화의 과정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사례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일방적인 동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문화시설의 이용과 역할의 측면에서 하나의 정연한 흐름으로 정리하기 어렵다. 즉, 민중에게 문화시설은 여가 및 유희의 장소로서 ‘일제의 의해 도입된 근대’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극적인 변화가 아니라고 판단한다. 현재의 공공성과 보편성의 관점에서 당시의 문화시설은 근대성을 구현하지 못한 반쪽의 공간이지만, 새롭게 도입된 시설로 전근대와의 경계를 형성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일제 식민지기 문화시설의 조성 뿐 아니라 이용과 역할에 초점을 두고 분석하였다. 당시 식민지 권력은 새로운 사회 질서와 제도에 의해 조선인을 학습하고 훈육하고자 하였으나, 다양한 주체에 의해 설립된 문화시설은 각각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경성에 건립되었고 다양한 결과를 표출하였다. 1910년대 문화시설은 일제가 진보한 문명을 선전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였고 1920년을 전후로 문화시설은 다방면에 건립되었다. 1930년대에는 관에 의해, 보다 과감히 문화시설이 도입되었고 일본인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 예술 산업의 성장 등으로 자본과 문화가 결탁한 모습이 나타났다. 또한 민족적 영역의 경계는 흐려지면서 문화시설을 통한 공간 동화가 나타남을 분석하였다. 일제 식민지기의 문화시설은 식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탄생하였을지라도 민중이라는 이용 주체가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은 자생적으로 구축되었다. 당시의 문화시설은 물리적 형태 뿐 아니라 지역의 분위기, 근대화 수준, 건립시기 등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관계 맺었으며, 이를 통해 문화시설이 하나의 고정된 객체가 아니라 변화하는 주체로 형성되었음을 분석하였다.
우리가 일제 식민지기에서 근대를 경험하였다면, 식민지기라 하더라도 근대의 기원은 당시부터 추적해야 한다. 당시의 근대적 경험은 현재의 성격에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규율과 계몽의 접촉지대로서, 문화시설이라는 단일 건물을 대상으로 시대적 흐름에 따라, 공간과 기능을 분석하였다. 기존의 문화시설에 대한 연구는 문헌정보학, 공연예술학, 미술사학 등으로 파편화되어 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도시계획 분야와의 결합으로 교차학문적 분석을 통해, 통시적 접근과 식민지 조선의 특수성을 고찰하였다. 도시가 근대화의 실험실이자 세계주의의 근거지였음을 상기해볼 때, 문화시설 연구와 도시공간 연구의 융합 필요성과 가능성도 본 연구의 의의라 할 것이다.
This study begins from the question, “Did cultural facilities that introduced in the distorted modernization process originally set the same location and perform the same functions as they do today?”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locational features of modern cultural facilities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social functions according to the current of the times. The core of urban spaces and facilities as well as the origin, publicness, and administration of what we refer to as cultural facilities were creat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Moreover, research must be conducted on this period because it is necessary to reexamine the roles and functions of public cultural facilities in the present times due to the current focus on urban development and regeneration.
Culture is a material and spiritual product that is acquired, shared, and delivered by members of society, and cultural facilities are spaces in which various cultures are created, distributed, and consumed. Cultural facilities can be defined as places of mutual emotional, human communication, but they differ from traditional spaces and have grown remarkably at this turning point for modern society. While modern facilities in the military regime were focused on punishment in the judicial and penalty system, cultural facilities that enabled interchange for assimilation were planned as “cultural politics.” Cultural facilities were “contact zones” in which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and the Gyeongseong masses routinely met, clearly showing the spectrum of assimilation. This study therefore aims to examine the cultural facilities established by various agents to explain the formation and change of modern urban planning and identify the social implications of cultural facilities in urban spaces.
The temporal scope of the study is the period from 1910 to 1937 in which Joseon shifted to a war footing. This study analyzes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modern cultural facilities as well as strategies in cultural politics starting from 1920 when changes first occurred in the ruling method. The spatial scope of the study is the boundaries of Gyeongseong-bu, and the subjects are libraries, theaters, and museums as spaces of visual culture that are exclusive properties of modern society.
The analysis of cases of libraries, theaters, and museums established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showed that cultural facilities at the time blurred the boundaries of a dual city from a locational perspective. There were a few reasons for this: first, cultural facilities at the time were established in various places of Gyeongseong as a symbol of advancement. Cultural facilities introduced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were located in the heart of the city, with exteriors that differed from those of conventional buildings in terms of architecture and landscape. The buildings introduced by the Empire of Japan were equated with the West and were expressed in terms of modernity and advancement through their “distinction” from Joseon architecture. Moreover, spatial hegemony was to be seized by creating cultural facilities in nationally symbolic spaces, such as establishing Buminkwan on the land owned by the royalty of Joseon and planning Gyeongseong Prefectural Library and Joseon Government-General Library in the territory of the Korean Empire. Second, cultural facilities were used for the spatial assimilation of Namchon where Japanese people resided, as a mechanism to attracts Joseon people who admired advanced culture. Various modern theaters and Gyeongseong Gonghoedang established by the Empire of Japan were located in Namchon, and the major beneficiaries of these facilities were Japanese people. Cultural facilities that were distributed in a discriminatory manner b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operated as spaces of consumer culture that attracted Joseon people to Namchon, where they experienced modernity as the masses, admiring advanced culture. Third, the boundaries of the ethnic space, which was divided into Namchon and Bukchon, were blurred by cultural facilities. Bukchon and Namchon had been defined within a relationship of colonial authority pointing to domination and resistance, but the boundaries were blurred as the economic power moved north. Gyeongseong Library in Joseon was closed due to operational difficulties, and the theaters around Tapgol Park were also run by Japanese people, showing the way in which Japanese people led spatial changes with the purpose of economic exploitation and the control of colonized people. The boundaries were broken down in the process of ethnic conflicts, competition, and assimilation in the private sector rather than through the influence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Moreover, regarding the social function of cultural facilities, this study found that cultural facilities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were used as spaces in which people were encouraged to learn to become modern citizens. First, the Empire of Japan used cultural facilities as disciplinary, government-led spaces. Cultural facilities were used as the academic bridgehead of the continental invasion by the Empire of Japan, with the intention to reproduce the discourse of colonial rule as an event of exhibition and effectively ensure the discipline of the colony by comparing it with Joseon. Libraries were mostly arranged with Japanese books, and theaters and museums were used to create cultural gaps between Japanese and Joseon people while also nurturing people to become war-focused. As such, the Empire of Japan used cultural facilities to emphasize modern discipline and establish cultural superiority in order to reinforce their regime. Second, from the perspective of Joseon people, cultural facilities served as places of enlightenment that led to the emergence of a new social class. Libraries and museums carried out cultural projects for children and women and continued to provide education for the socially disadvantaged. Unlike in Western society, due to social education that was carried out rapidly due to Korea’s colonial characteristics, cultural facilities were used as spaces of enlightenment for refinement and the development of rational reason. Third, for the general masses, cultural facilities served as spaces for leisure and entertainment. The Empire of Japan tried to assimilate Joseon by contrasting the historic sites of Joseon royalty with modern spaces, but the Joseon masses transformed these facilities into recreational facilities. At the time, cultural facilities were more like playgrounds that provided interesting attractions rather than places that propagated modernity. They were perceived and substituted as spaces of amusement and recreation by the people.
The Japanese colonial era is generally characterized by the military ruling method, cultural politics, and military logistics. However, the displacement of space by the Empire of Japan continued throughout the entire colonial period through the hosting of exhibitions in Gyeongbokgung Palace and the establishment of museums in each palace. Libraries were closed after the declaration of the Joseon Education Decree and reappeared after cultural politics, being absorbed into the public libraries of Japan. Moreover, theaters were used as venues of propaganda used in government events. In other words, this study found that cultural facilities were introduced in a different manner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confirmed that their locational characteristics and social functions varied depending on whether the establishment agent was Joseon or Japan. The transition to modernity in Western society delivered the greatness of civilization to the people through new public buildings as symbols of a civilized city. However, upon experiencing colonization, Korea lacked independence and showed a different process from that of the West. Japan’s acts of randomly destroying urban spaces and constructing cultural facilities can be identified as part of the process of assimilation. However, as can be seen in many cases, there was no unilateral form of assimilation, and the use and role of cultural facilities cannot be summarized in an orderly fashion. In other words, for the masses, cultural facilities show that “modernity introduced by the Empire of Japan” as places of leisure and amusement does not consist of such a dramatic change as we may think. From today’s perspective of publicness and universality, cultural facilities at the time are incomplete spaces that failed to fulfill modernity, but the newly introduced facilities formed boundaries with premodernity.
This study analyzed cultural facilities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with a focus on their construction as well as their uses and roles. Colonial power at the time intended to teach and discipline Joseon people with a new social order and system, but cultural facilities built by various agents were constructed in Gyeongseong representing each stance, revealing various outcomes. Even though cultural facilities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were created as part of the colonization project, the way in which the masses as the main agent used these spaces was formed autonomously. At the time, cultural facilities formed connections with various elements such as the regional atmosphere, the modernization level, and the point of construction in addition to physical shape, through which cultural facilities were formed as a changing subject instead of a fixed object.
Experiences of modernity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must trace the origin of modernity from that time, even if it was a colonial period. This is because the experience of the time created the characteristics of the present times. This study analyzed the space and function of cultural facilities, which are single buildings, along the current of the times as a contact zone for discipline and enlightenment. Studies on cultural facilities are fragmented into the fields of library and information science, performing arts, and art history. However, this study analyzed the specificity of colonial Joseon in a diachronic approach based on cross-disciplinary analysis, combined with urban planning. Considering that cities are labs of modernization as well as the base of cosmopolitanism, the significance of this study is found in the need for and possibility of convergence between studies on cultural facilities and urban spaces.
Language
kor
URI
http://hdl.handle.net/10371/169412

http://dcollection.snu.ac.kr/common/orgView/000000162643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Engineering/Engineering Practice School (공과대학/대학원)Program in Urban Design (협동과정-도시설계학전공)Theses (Ph.D. / Sc.D._협동과정-도시설계학전공)
  • mendeley

Items in S-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