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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공신화상의 제작기법 연구 : <신응구 초상>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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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강유진
Advisor
김성희
Issue Date
2020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조선 중기,광해군대,공신화상,재료기법,회화,모사,신응구 초상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 서울대학교 대학원 : 미술대학 동양화과, 2020. 8. 김성희.
Abstract
광해군대는 역대 가장 많은 수의 공신이 녹훈되었던 시기이다. 그런데 당시 공신 녹훈에 관한 문헌 기록은 광해군 대 공신이 인조반정 이후 삭훈되며 화상과 함께 삭제되었다. 비슷한 시기의 다른 공신에 관한 의궤에 따르면 10명 내외의 화원들이 공신화상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광해군대 역시 비슷한 수였을 것으로 보인다. 적은 수의 화원이 막대한 양의 공신화상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제작과정이 철저한 분업과 반복을 통해 효율적으로 진행되었을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인물의 자세와 복식의 표현, 채전 문양 등이 굳어져 당시 공신 화상들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양식이 되었다. 선조대의 호성·선무·청난공신과 인조 대의 소무·영사공신과는 다른 광해군대만의 화상의 양식이 존재하였으며, 가장 많은 수의 화상을 제작했던 이 시기에 조선 중기 초상화의 전형이 완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기록이 현재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재료를 확정하기는 어려우나, 전후의 기록과 실물 유물의 면밀한 관찰 및 과학적 조사로 조금이나마 추정해 볼 수 있었다. 광해군대 화상에 사용된 재료들은 호성·선무·청난공신보다는 그 이후의 소무·영사공신과 더 유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선조대의 공신화상은 임란 직후 나라의 경제 사정이 악화되어 화상의 재료로 고가의 안료를 사들이기에는 여유가 없었으며 점차 상황이 나아지면서 고가의 안료들도 사용이 가능해졌다. 광해군대부터 공신 화상에 금, 은과 같은 안료를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아 광해군대는 이후 공신화상 제작의 표본이 되는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양식은 전체적으로 17세기 초 공신화상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세부적인 관찰을 통해 전후와의 확실한 양식상의 차이를 알 수 있었다. 광해군대 공신화상의 얼굴 표현의 경우 정확한 오악(五岳)의 표현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오목한 곳을 어둡게 채색하는 음영법 또한 함께 적용되었다. 당시 양식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자세인데, 좌안 7분면의 표현이 능숙해지면서 어깨선을 완만하게 하여 더욱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관모의 높이는 이전 시기보다 낮아졌으며 교의와 족좌대는 이전 양식을 그대로 계승하였다. 채전의 경우 문양 한 단이 추가되었으며 다른 시기에서 보이지 않는 초엽문이 등장한다.
기법 역시 17세기 조선 중기 공신화상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을 거의 흡사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 기법이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지에 대하여 모사 과정과 함께 제시해 보았다. 선묘의 경우 전체적으로 철선묘계를 사용하였으며 선의 시작과 끝에서 맺어주고 풀어주는 정도의 변화를 주었다. 얼굴 표현에서 특히 섬세한 필선을 사용하였으며 채전 부분에서는 자를 이용한 직선을 구사하기도 하였다.
17세기 초 공신 화상에서 배채는 고려 시대의 전통과 중국의 영향이 혼합되어 각 작품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의 경우 동일색 배채법과 호분법을 함께 사용하였는데, 비슷한 시기의 과 달리 동일색 배채법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전채 과정에서는 다양한 색의 석채와 귀금속 등을 활용하여 섬세하고 화려한 묘사가 진행되었다. 얼굴에서는 매우 옅은 선염으로 오악과 음영을 나타내었으며, 관복에서는 여러 번 중첩하여 채색하며 자색이 섞인 흑단령의 미묘한 색을 구현하였다. 흉배는 가장 섬세한 묘사가 필요한 곳으로, 구름, 기러기, 모란 등 구성요소별로 정성을 쏟아야 했다. 모직물의 질감을 살린 채전 부분의 채색도 많은 시간이 드는 기법이었는데, 색별로 점을 찍어 표현하였다. 그중 황색과 분홍색은 별도의 과정이 필요하였다.
공신의 녹훈과 화상 제작이 조선 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만큼 기법에서도 그 공력이 느껴졌다. 본 연구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재료기법이 있다면 후에 더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밝혀지기를 희망한다. 회화유물의 미술사적 가치와 함께 구체적인 재료기법이 학문적으로 정리된다면 전통 미술의 저변을 넓힐 뿐 아니라 현대의 창작 활동에도 영감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The reign of Gwanghaegun saw the largest number of meritorious subject appointments in the Joseon period. Records of such appointments, however, were destroyed with the portraits of the meritorious subjects after the 1623 coup d’état when Injo’s reign stripped the merits of the subjects appointed during the reign of Gwanghaegun. Other appointments during a similar period suggested that about 10 court painters painted these portraits, and the portraits painted during the reign of Gwanghaegun used similar techniques to the period after. With such a small number of court painters producing a large number of portraits, production would have a highly efficient process involving a strict division of labor and numerous repetitions. These characteristics developed into a format that manifested in the portraits, including poses, the expression of clothing, and the embroidery in the colored mats. Portraits of meritorious subjects painted during the reign of Gwanghaegun had unique formats that were distinguishable from the subjects appointed during the reigns of Seonjo and Injo.
While the lack of surviving records makes identifying the pigments used in these portraits difficult, a close examination of post-war records and artifacts and a scientific investigation could provide some estimations. Pigments used for portraits during the reign of Gwanghaegun were supposedly similar to those used during the reign of Injo. Portraits of meritorious subjects during the reign of Seonjo reflected the economic difficulties resulting from the aftermath of the Imjin War, which limited the painters to low-cost pigments until the economy stabilized. Given how precious metals like gold and silver were used as pigments during the reign of Gwanghaegun, the portrait production method at the time became the standard thereafter.
The production format at the time generally followed the prevalent early 17th century formats, yet detailed observation could identify some distinct differences. Portraits produced during the reign of Gwanghaegun featured shading and prominent facial protrusions (oak, 五岳). The most distinctive differences can be found in the poses, where the refinements to the characteristic left-side three-quarter view (左顔七分面) allowed for gentler, more natural shoulder slopes. The height of the official hat was reduced, while the chair and the footrest remained the same. Another layer of pattern was added to the colored mat, along with patterned plants, which were not seen in portraits made in the previous periods.
Techniques used during the Gwanghaegun period were similar to those used during the mid-Joseon period. This study presents the specific details of such techniques and the replication process. For drawing techniques, most portraits used the iron-wire texture stroke (cheolseonmyo) with variations at the beginnings and ends of the lines. Delicate strokes were used for the face, while straight lines made with rulers were used for the colored mats.
Baechae(back coloring) used for individual portraits exhibited considerable variations, which were brought about by the mixture of Goryeo-era traditions and Chinese influence. The Portrait of Shin Eung-gu uses both the same-color baechae technique and calcium carbonate pigments but the technique was used more extensively than its contemporary, The Portrait of Yi Jung-ro.
During the front coloring stage, the painters utilized delicate and extravagant techniques using mineral pigments of various colors and precious metals. Very light line colorings accentuated the shading and facial protrusions, while the costumes were colored multiple times to highlight the delicate mixture of indigo and black in the official robes. The chest insignia required the greatest attention to detail, from the clouds to the wild geese and peonies. Coloring the mats required significant time investment to express their textures, which was achieved by coloring in dots. Using yellow and pink pigments, specifically, required additional procedures.
Because the appointment of meritorious subjects and the production of their portraits played highly important roles in the Joseon royal court, the painting techniques reflected this importance as well. This study hopes that future research will explain the production techniques excluded from this study, the artistic organization of production techniques, and the value of paintings from an art history perspective to expand the understanding of Korean traditional art and inspire modern artistic endeavors.
Language
kor
URI
http://hdl.handle.net/10371/169739

http://dcollection.snu.ac.kr/common/orgView/000000162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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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Fine Arts (미술대학)Dept. of Fine Art (미술학과)Oriental Painting (동양화전공)Theses (Master's Degree_동양화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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