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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중엽 조선과 명의 정국과 수양대군의 대명외교
The Political Situations of Joseon and Ming in the Mid-Fifteenth Century and Prince Suyangs Diplomacy toward 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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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장대근
Advisor
오수창
Issue Date
2020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조선토목의 변환관수양대군고명사은사JoseonMingTumu Crisis(土木之變)EunuchPrince SuyangEnvoy to Thank Certificate(誥命謝恩使)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 서울대학교 대학원 : 인문대학 국사학과, 2020. 8. 오수창.
Abstract
본 논문은 수양대군이 유동적인 국내외 정세를 기민하게 활용하면서 즉위하는 과정을 분석하였다. 15세기 중엽 조선과 명은 동시에 몽골의 위협과 계승 문제를 겪었다. 본 논문은 당시 정세에 주목하여 수양대군이 명으로부터 순조롭게 즉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배경을 규명하고자 했다.
명 건국 이후 몽골은 초원으로 후퇴했지만, 여전히 명에 위협적인 존재였다. 1440년대 몽골의 오이라트가 에센의 지도하에 몽골 전역을 장악하고 동서로 세력을 확장했다. 에센은 명에 점점 더 많은 경제적 요구를 했고 양자 사이의 갈등은 깊어졌다. 급기야 1449년 당시 명의 황제였던 정통제가 몽골 친정에 나섰다가 포로로 잡혀가는 土木의 變이 발생했다. 순식간에 비어버린 제위는 정통제의 이복동생 경태제에게 돌아갔다.
경태제는 토목의 변을 수습하면서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노력했다. 정통제는 이듬해 태상황제로서 귀국했으나 사실상 남궁에 유폐되었다. 정통제의 아들은 경태제의 아들에게 황태자 지위를 빼앗겼다. 태상황제의 존재와 후계자 선정 문제는 경태 연간 내내 경태제의 지위를 흔드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한편 조선에서는 세종대 후반 왕세자가 섭정하자 종친이 다시 정치의 전면에 등장했다. 특히 세종의 두 아들인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은 정계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두 대군은 관직에 임명되지 않고도 왕명을 출납하거나 국정 논의에 참여하는 등 정치 행보를 이어나갔다. 수양대군은 세종과 왕세자가 동시에 중병을 앓자 명 사신을 郊迎하는 역할을 대신 수행하기도 했다. 세종과 문종의 강력한 후원을 받은 두 대군은 단종이 12세에 즉위했을 때 이미 상당한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였다.
조선-명 관계에서 조선 출신 환관은 황제의 메신저 역할을 수행했다. 여말선초 지속적인 火者 진헌이 이뤄지면서 몇몇 조선 출신 환관은 황제의 신임을 얻고 대조선 외교의 중요한 행위자가 되었다. 환관 사신의 위상은 영락-선덕 연간 절정에 달했으나 정통제가 즉위하자 급격하게 하락했다. 하지만 토목의 변으로 경태제가 새로 등극하자 조선 출신 환관은 과거의 권력을 되찾았다. 경태제는 자신에게 필요한 물품을 구해줄 조선 출신 환관을 대조선 사신으로 다시 기용하였다.
수양대군은 단종 즉위 직후 고명사은사로 북경에 갔다. 종친을 고명사은사로 보낸 전례가 없음에도 수양대군은 강력하게 사행을 자청했다. 그는 북경에서 대표적인 조선 출신 환관이었던 윤봉을 만나기도 했다. 수양대군은 대내적으로 국왕의 숙부로서 두터운 대우를 받는 동시에 명에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키고 上國의 권위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다.
수양대군은 이미 계유정난으로 조선의 실질적인 권력자였으나, 결코 섭정의 지위에 만족하지 않았다. 수양대군은 선양의 형식을 빌어 찬탈을 단행했다. 왕위 찬탈은 명 사신이 서울에 체류하는 중에 이루어졌다. 단종비 책봉을 위해 조선을 방문한 두 사신은 모두 조선 출신 환관이었다. 두 사신 중 한 명은 수양대군의 사돈이었던 한확과 관계가 있었다. 한확은 자신의 두 누이를 명 황제의 후궁으로 들인 皇親이었다. 수양대군은 공녀 친족과 인척 관계를 맺고 조선 출신 환관과도 교류했던 것이다. 조선에서 수양대군의 지위를 알고 있었던 명 사신은 왕위 교체를 지지 혹은 최소한 묵인하였다.
세조 책봉은 중종과 인조의 사례와 비교할 때 상당히 원만하게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세종대 후반 종친의 대두라는 대내적 배경과 동시에 토목의 변과 명 황실의 계승 문제라는 대외적 배경이 작용했다. 수양대군은 이러한 배경에서 조명관계를 자신의 집권에 유리하게 이끌어나갈 수 있었다.
This paper analyzed how Prince Suyang of Joseon used the ever-changing international and domestic situations to be crowned king of Joseon. Focusing on the fact that Joseon and Ming China both received threats from the Mongol and experienced troubles in the succeeding the thrones in the mid-fifteenth century, this paper aimed to identify the background through which helped Prince Suyang receive official recognition from the Ming dynasty as the king of Joseon.
Although the Mongols retreated to the grasslands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 Ming dynasty, it remained a threat to the new dynasty. In 1449, Emperor Zhengtong of Ming was even captured after his expedition to Mongolia. After the Tumu Crisis(土木之變), Emperor Zhengtongs half-brother acceded to the throne and became Emperor Jingtai. He put the returning Emperor Zhengtong into confinement and made his son the crown prince instead of his nephew. The existence of Emperor Zhengtong and the issues with his successor was a critical factor that threatened Emperor Jingtais legitimacy throughout his reign.
In the meantime, in Joseon, the crown prince acted as regent at the end of King Sejongs reign, which led the royal relatives to return to the fore of politics. Prince Suyang and Prince Anpyeong, in particular, continued to be deeply involved in politics by delivering the kings order or participating in official meetings without being appointed to any official posts. With strong support from King Sejong and King Munjong, the two princes had already established their positions in politics when King Danjong succeeded the throne at the age of twelve.
Prince Suyang volunteered to visit Beijing as an envoy to thank certificate(誥命謝恩使) as soon as King Danjong ascended the throne. In Beijing, he also met Yoon Bong, the well-known eunuch at the Ming court who was from Joseon. Although Members of the royal family had never been appointed as the delegation to thank certificate, Prince Suyang made a strong request. He intended to garner respect as the uncle of the king domestically and make a strong impression in the Ming court to use the authority from the Ming dynasty in the future.
Prince Suyangs usurpation took place during a visit from the Ming envoy. Prince Suyang by then was already the de facto ruler of Joseon after Gyeyu-Jengnan(癸酉靖難). He also formed good relations with the Ming dynasty by reaching out to the Ming eunuch from Joseon and becoming family with the relatives of the Ming princess by marriage. In comparison to King Jungjong and Injo, the approval process from the Ming dynasty was more straightforward for Prince Suyang. The external factors, of the Tumu Crisis and the problems in the succession of the Ming throne, played pivotal roles in the approval. Thanks to such circumstances, Prince Suyang was able to lead the Joseon-Ming relations to better support his power.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70534

http://dcollection.snu.ac.kr/common/orgView/00000016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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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Korean History (국사학과)Theses (Master's Degree_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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