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 작품에서 고립의 양상과 상징적 의미

Abstract

본 논문은 포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장치이자 주제인 고립에 주목해 여섯 편의 단편에서 고립의 상징적 의미와 양상을 연구한다. 흔히 포의 작품 세계는 지나치게 유럽적이고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비판을 받아왔다. 포는 한편으로는 추리소설과 과학소설의 창시자이자 단편소설의 장인으로 추앙받으면서도 비교훈적이고 미국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문학성이 과소평가되고 한동안 정전 작가의 반열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에머슨이나 휘트먼 등 당대의 초월주의 작가들이 미국의 밝은 측면과 개인의 가능성을 노래했다면, 포는 광기와 불안감에 사로잡힌 인물들을 통해 악몽과 무의식의 세계를 그려낸다. 그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구현되는 모티프인 고립이 정기 간행물에 지속적으로 작품을 기고하며 편집자로도 일했던 작가가 민감하게 감지한 당대 미국의 사회적 변화와 위기감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이 본고의 주장이다. 본론의 1장은 「고자질하는 심장」과 「검은 고양이」에 나타나는 설화자의 내적·심리적 고립을 추적한다. 두 작품은 시신을 은폐해 살인 혐의에서 벗어나려던 설화자가 충동적으로 자신의 범죄를 폭로한다는 동일한 주제를 변주한다. 두 설화자는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자신의 범죄를 설명함으로써 자신의 정상성을 입증하려 하지만, 작품이 전개되고 이야기 제어력을 잃어감에 따라 그들의 광기는 더욱 극명해진다. 또한 그들을 강박적으로 사로잡는 노인과 고양이의 한쪽 눈은 에머슨의 투명한 안구가 대변하는 건강한 감수성과 이성에의 신뢰와 정면으로 대치된다. 본론의 2장은 「적사병의 가면」과 「구덩이와 진자」, 「어셔 가의 몰락」을 통해 인물의 내면적 고립이 물리적, 공간적으로 구현되는 양상을 살핀다. 밀폐된 진공적 공간에서 인물들이 맞이하는 필연적인 고립과 죽음은 그 자체로 작가가 의도한 분위기이자 주제가 된다. 포는 독자에게서 의도한 효과를 끌어내기 위해 치밀하게 작품을 축조해내었으며, 「집필의 철학」 등에서 스스로를 일종의 기술자로 명명했다. 포 작품의 정수로 꼽히는 「어셔 가의 몰락」에서 이는 가시적으로 극대화되며, 저택의 붕괴와 가문의 멸망을 동시에 의미하는 몰락(fall)은 곧 로렌스가 주장한 하나의 가치가 다음 시대의 가치로 변환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본론의 3장은 「군중 속의 남자」와 벤야민의 논의를 중심으로 포 작품에서 인물들이 보여주는 소외와 고립성이 근대적 지식인상의 원형으로서 도시 산보자로 이어지는 지점을 살핀다. 즉 벤야민은 도시의 군중에 매혹되면서도 그 속에 포섭되지 않는 개인에 주목했는데, 포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이를 선취한다는 것이다. 이상을 통해 본고는 포 작품을 관통하는 주요한 개념으로 고립성을 제시하며, 포가 작품 속 인물들의 고립을 통해 근대적 배경을 전경화 했음을 밝히고자 한다. 또한 그 자신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포의 작품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광기와 불안감은 그들의 심리적, 물리적 고립과 함께 동시대 작가들과는 전혀 다른 근대의 미국적 자아를 그려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