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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한국병합과 한국황실처분의 정략적 함의 : Japanese imperialisms Korea Annexation and the political implication of Daehan Emperial dispos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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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윤대원

Issue Date
2017-06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규장각, Vol.50 No., pp. 303-330
Keywords
한국황실국호왕공족칙사이왕가 감독권황실령대륙침략정책Royal-Family of Daehan Empire(한국황실)the name of countryKing and princes groupRoyal envoythe right of Yi Royal-Family(이왕가) supervisionRoyal ordercontinental aggression policy
Abstract
이 연구는 병합 후 한국의 국가호칭 및 국왕호칭 문제를 두고 일어난 통감부와 일본 정부 사이의 갈등의 배경과 그 해결이 갖는 정략적 함의를 밝히는데 있다. 일본은 1910년 7월 8일 내각회의에서 병합 후 한국의 국호를 조선이라 하고 한국황실을 공족으로 삼고 황족의 예로 대우하기로 했다. 이 결의는 8월 16일 데라우치와 이완용의 비밀 회담에서 병합 설득의 명분을 내세운 이완용의 요구에 의해 국호는 조선으로, 한국황실은 왕공족으로 칭하기로 했다. 일본이 자신들의 방침을 바꾸면서까지 이완용의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 쉽게 다가온 병합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병합 후 한국황제를 왕으로 임명하는 왕 책립의 형식 및 칙사의 성격 그리고 이왕가의 감독권 문제로 통감부와 궁내성 사이에 의견 충돌이 일어났다. 데라우치는 병합에 대한 회유와 한국황실의 정치 활동 단절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왕 책립의 예우를 강조했다. 그 배경에는 병합 후 조선총독이 이왕가를 직접 감독하려는 데라우치의 정략적 함의가 있었다. 이 때문에 병합 후 한국은 식민지이면서도 독립을 표상하는 국호와 왕실이 존재하는 독특한 식민지가 됐다.
ISSN
1975-6283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74456
DOI
https://doi.org/10.22943/kyujg.2017..5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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