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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구의 통설 재검토 : 실록 편찬 단계 및 마니산사고설을 중심으로 : The reassessment of the common views of the studies on Sillok(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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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강문식

Issue Date
2016-12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규장각, Vol.49 No., pp. 247-278
Keywords
實錄正草實錄廳儀軌江華史庫摩尼山Sillok(實錄)Jeongcho(正草)Sillokcheong Uigwes(實錄廳儀軌)the history archives of Ganghwa island(江華史庫)Mt. Mani(摩尼山)
Abstract
본고는 실록 연구의 기존 통설 중 실록 편찬 단계와 조선후기 마니산사고설 등 두 가지 내용에 대해 재검토하였다. 실록 편찬 단계에 대한 통설은 初草→中草→正草를 거쳐 실록 원고가 완성되면 이를 활자로 간행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초초→중초→정초의 편찬 단계는 실록이 필사본으로 제작되던 상황을 기준을 설정한 것이며, 이때의 正草는 최종 완성된 실록 正本이었다. 이와 같은 편찬 관행은 실록의 활자 간행이 시작된 1473년(성종 4) 이후에도 일정 기간 유지됐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이르면 실록 편찬 과정에 변화가 나타나는데, 즉 中草 이후 正草 작성 단계가 사라지고 곧바로 印出이 진행되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조선후기에 작성된 實錄廳儀軌의 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시점을 정확히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 사이에 변화가 시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존의 실록 연구에서는 임진왜란 이후 설치된 강화사고가 摩尼山에 있었다고 보았다. 이 주장은 대체로 임진왜란 이후 재간행된 『명종실록』 「부록」의 기사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1606년(선조 39) 제정된 「京外史庫守直節目」 및 효종․현종대의 『승정원일기』에는 정족산으로 이건되기 전의 강화사고가 강화부 읍내에 있었음이 명시되어 있다. 또, 조선후기에 편찬된 강화부 읍지에 마니산사고 관련 기록이 없는 점, 병자호란 당시 주로 강화읍성 일대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보이는 淸軍에 의해 실록이 큰 피해를 입었던 점도 사고가 강화부 안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상의 내용을 고려할 때 정족산사고 설치 이전의 강화사고는 마니산이 아니라 강화부 읍내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따라서 기존의 마니산사고설은 재고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ISSN
1975-6283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74466
DOI
https://doi.org/10.22943/kyujg.2016..49.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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