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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內喪在先 의례의 변화와 의미 : 仁敬王后 國恤을 중심으로 : The Change and Meaning about Queens funeral earlier than kings in the Late Choson Dynasty : focused on the national funeral of Queen In-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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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윤정

Issue Date
2018-12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규장각, Vol.53 No., pp. 193-224
Keywords
內喪在先仁敬王后肅宗服制魂殿Queen’s funeral earlier than king’sQueen In-KyungKing Suk-JongRules of mourningSpirit hall
Abstract
내상재선은 왕의 妻喪이자 세자의 父在爲母喪으로서, 왕과 세자의 主喪 문제와 의례의 차등적 구현 등 다양한 변수와 관련되어 있었다. 세자 없는 내상재선인 인경왕후 국휼은 세자의 부재로 인한 의례의 미비를 해소하기 위해 왕의 처상으로서의 의미가 강조되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에 小斂․大斂, 成服․除服, 發引, 練祭․祥祭 등에 왕의 擧哀儀가 마련되었고, 왕이 혼전에 친림하는 奠酌禮가 거행되었다. 이러한 의식은 전례에 없던 것으로, 세자가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의례의 결략이 왕의 의례로 보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경왕후 국휼에서 숙종의 상복은 인열왕후상의 전례에 따라 자최장기로 정해졌지만, 실제로는 13일째 상복을 벗고 백단령․마포대로 바꾸어 30일째 복을 마치는 역월단상의 방식이었다. 백관의 상복은 자최기년이지만, 왕의 복제에 따라 상복을 바꾸는 절차가 추가되었다. 대왕대비와 왕대비의 상복 역시 왕의 복제를 기준으로 역월단상의 원칙이 적용되었다. 왕의 복제가 갖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경왕후 국휼에서 왕의 의례적 역할은 확대되었다. 거애의와 전작례가 마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자의 부재에도 연제와 담제를 거행함으로써 왕의 主喪으로서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왕의 주상은 세자의 부재라는 변수와 상관없이 내상재선의 의례가 온전히 거행될 수 있는 예학적 근거가 되었다. 이러한 논의를 거쳐 18세기 『국조상례보편』에는 왕이 주상으로 명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내상재선의 담제 후 혼전의례에 대한 정비가 진행되었다. 혼전은 흉례의 공간이지만, 내상재선의 경우 담제 후에도 부묘 전까지 신주를 모시고 제향을 거행하는 길례의 공간이기도 했다. 이러한 혼종성은 곡과 음악의 혼용, 종묘 의례의 적용 등에 대한 논의를 불러왔다. 상제 후 곡례를 폐지하고 음악 사용을 정비하였으며, 종묘 의례를 적용하려는 의도에 따라 삭망제 등의 三獻이 單獻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종묘와의 차등이 강조되면서 別廟의 지위에 따른 음악과 음식의 규정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ISSN
1975-6283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74500
DOI
https://doi.org/10.22943/kyujg.2018..53.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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