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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祖의 奎章閣臣 書齋肖像 요구 : 정조대 서재초상화의 새로운 양상
Request of King Jeongjo : Portraits of his Courtiers in the Scholars Stu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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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혜원
Issue Date
2020-06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규장각, Vol.56 No., pp. 217-244
Keywords
書齋書齋圖書齋肖像畵家居圖正祖奎章閣閣臣金鍾秀吳載純金熹the scholar’s studio paintingthe scholar’s studio(library)KyujanggakKing JeongjoOh Jae-soonKim Jong-sooKim Hee
Abstract
정조대 규장각 제학을 역임한 吳載純(1727~1792)의 아들 吳煕常의 문집 『老洲集』에는 집안의 내력을 밝힌 「家乘逸事」에 다음의 글이 있다. 정조께서 일찍이 內閣[규장각]에 명하여 公(吳載純)의 眞像을 그려 올리라 하셨다. 하루는 또 畵工을 불러 閣臣들이 집에서 기거하는 그림[家居圖]을 그리도록 명하고 畵題를 써서 내리며 이르기를 吳提學이 趺坐하고 習靜하는 모습, 金提學이 손님을 마주하고 불주를 휘둘러 먼지를 터는 모습, 金直學이 술에 취해 책상에 기대어 잠든 모습이라 하고는, 화공을 시켜 그 집에 가서 작은 초상을 그리고 또한 堂과 들창, 책상, 벼루의 위치를 모두 그려 올리라 하시었다. 김제학은 相公 金鍾秀(1728-1799)이고, 김직학은 相公 金熹(1729-1800)이다. 이 기록은 강관식교수가 임매의 서재초상과 함께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도상의 등장으로 소개한 바 있다. 이에 본 논문은 정조대 서재초상화에서 등장한 새로운 양상이 어떤 것이었는지 추적하였다. 새로운 도상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정조의 회화관, 규장각의 화원체제와 정조와 閣臣과의 관계가 작용되었다고 보았고, 이에 텍스트는 3부분의 문구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첫 번째 문구는 의 제작주체와 대상에 관한 내용이고, 두 번째 문구는 제작방식과 화제의 내용에 관한 것이며, 세 번째 문구는 작품의 소재와 성격에 관한 것이다. 화제는 정조가 생각한 근신들의 성정과 행적을 바탕으로 하는 응축된 이미지였으며, 이를 한 컷의 장면으로 연출하여 시각화한 이미지였다. 사랑하는 近臣들을 이상적인 서재의 표상인 明窓淨几에서 고사적 품격의 이미지로 격상하여 재현하려했던 정조의 시도는 김종수의 화제에서 볼 수 있듯 그 이미지다운 실질적인 협력에 대한 암묵적 요구를 의미한다. 오희상의 「가승일사」에 기록된 각신 3인의 서재초상은 이전의 조선 초상화에서 강조하던 전형성에서 벗어나 서재 배경의 속화, 각화, 문방도가 고사적 풍모와 결합한 참신한 방식의 재현이었으며 동시에 18세기 서재 이미지에 일정한 영향을 주는 창작방식이 되었다.
ISSN
1975-6283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74522
DOI
https://doi.org/10.22943/kyujg.2020..56.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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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규장각한국학연구원)규장각규장각 (奎章閣) vol.56-5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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