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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대칸 릭단(재위 1604~1634)의 몽골 통일 시도와 그 유산 : The Last Great Khan Ligdan's Vision of Unified Mongolia and Its Leg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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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최주봉

Advisor
김석환
Issue Date
2021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릭단홍타이지촉투샤르빠 후툭투시주-응공승 관계몽골문 간주르마하칼라전국새LigdanHong TaijiChogtuSharpa Khutugtupatron-priest relationshipMongolian KanjurMahākālaImperial Seal
Abstract
Ligdan was the seventh-generation descendant of Dayan Khan, a renowned patriarch of the Mongols, and the last Great Khan who strove for the unification of Mongolia in the early seventeenth century. Although his aspirations to restore era of the Mongol Empire when a Great Khan sat at the top was unfulfilled, the suzerainty Ligdan sought over the whole of Mongolia survived on as a great legacy for both Manchurian and Mongolian ruling classes. So far, most of previous studies on Ligdan have predicated that he was either a tyrant defeated in the confrontation with Later Jin from the Manchus or a villain who attempted to persecute the Geluk Sect from the Geluks perspective. Even though a few studies evaluated Ligdan as an ambitious person, they focused mainly on the relations with Ming or Later Jin and overlooked the interrelations between Ligdan and the multiple powers in Mongolia. Therefore, through critical examination of the Manchus and Geluk Sects records, this article will ananlyze Ligdans attempt to unify Mongolia from the Great Khans point of view and will investigate its effect after his death.
In the early sixteenth century, Dayan Khan reorganized the Mongols into Six Tümens (myriarchy) and established Chinggisid rule. Dayan Khan enfeoffed his sons to form The Six Tümens System but it began to collapse after his death. The status of Great Khan as the suzerain of Six Tümens was undermined because the chiefs of each Tümen claimed Khan leaning upon the authority of Tibetan Buddhism. The centrifugal tendency gained more momentum as Later Jin became the rising power of the Liaodong region in the early seventeenth century.
After enthroned as the Great Khan in 1604, Ligdan subdued the rebellion against his succession and established the ruling system in the Chakhar Tümen with retainers under his direct control. Raiding Ming frontiers in the Liaodong region, he obtained the right to trade and tributes from the Ming Dynasty. When the Khorchin and the Five Otog Khalkha established relations with Later Jin and got out of his grasp, Ligdan annexed some of them to centralize his rule. Ligdan proclaimed that he was descended from Chinggis Khan and recreated the patron-priest relationship between Khubilai and Phagpa by inviting Sharpa Khutugtu, a high priest of Sakya Sect from which Imperial Preceptors originated in the Mongol Empire era.
Ligdan initiated the conquest against Western Tümens and seized Kökekhota, the capital of the Altan Khanids in 1627. After defeating allied troops of Western Tümens at Aibuha (挨不哈) in 1628, Ligdan succeeded in reclaiming hegemony which was leaning towards the Western Tümens since Altans reign, by subjugating the Tümed and the Ordos. Ligdan monopolized the tributes which used to be for each group of Western Tümens as well as new tributes from Ming Dynasty. After occupying Yeke Juu (銀佛寺) in Kökekhota, Ligdan completed the Mongolian Golden Kanjur in 113 volumes under his name in 1629, thus winning the position of the patron of Tibetan Buddhism which previously belonged to the Altan Khanids.
From 1630 to 1632, Ligdan attacked the Aru Mongols by making several expeditions beyond Khingan Mountains. Yet Ligdan could not subjugate the Aru Mongols because they surrendered to Later Jin, Khorchin, and Khalkha. In 1632, together with the Mongol troops who took sides with Later Jin, Hong Taiji plundered Kökekhota and collected tributes for Ligdan to himself by threatening Ming frontiers. After invading Hexi (河西) regions with Ordos troops, Ligdan died of smallpox at Shira Tala in 1634 on the way to Kökenuur (靑海) in order to rally his supporters such as Chogtu.
After Ligdans death, the Mongols under Ligdans command scattered, rapidly collapsing Chakhar power. Taking advantage of the surrender of Ligdans son Ejei and the acquisition of the Mahākāla statue and the Imperial Seal (傳國璽), Hong Taiji declared his lordship over the regime of the Mongols. On the other hand, the chiefs of Khalkha claimed succession to the legitimacy of Great Khan on the basis of their descent from Chinggis Khan. The conflict between Later Jin and Khalkha was the competition to inherit the legacy of Ligdan who attempted to unify Mongolia, since both sides eventually aimed for the sovereignty over the whole of Mongolia.
릭단은 몽골의 중시조로 평가받는 다얀 칸의 7대손으로, 17세기 초 몽골 통일을 추진하였던 마지막 대칸이다. 비록 대칸을 정점으로 하는 몽골 제국기의 질서를 회복하고자 했던 그의 위업은 미완에 그쳤으나, 릭단이 추구한 全몽골에 대한 종주권은 후대 만주와 몽골 지배층에게 커다란 유산으로 남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릭단을 다룬 선행연구는 대부분 만주와 겔룩파 측의 입장에서 릭단을 후금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폭군이나 겔룩파를 박해하려다 죽음을 맞이한 원흉으로 단정지어 왔다. 릭단을 몽골 통일을 지향한 진취적 인물로 평가한 연구라 할지라도 주로 명이나 후금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몽골 내부에 존재하는 여러 세력과 릭단의 상호 관계에 대해서는 간과하였다. 이에 본고는 만주와 겔룩파 측의 기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대칸의 입장에서 릭단의 몽골 통일 시도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이 후대에 미친 영향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16세기 초 다얀 칸은 몽골을 여섯 만호로 재편하고 칭기스 일족에 의한 지배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諸子分封을 통해 형성된 몽골의 여섯 만호 체제는 다얀 사후 각 만호에서 정권의 독립성을 표방하면서 와해되기 시작하였고, 각 만호의 수장들이 티베트 불교의 권위에 가탁하여 칸을 참칭하면서 여섯 만호의 종주로서 대칸의 위상은 크게 하락하였다. 17세기에 접어들어 후금이 요동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함에 따라 몽골 내부에서는 이탈의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었다.
1604년 대칸으로 즉위한 릭단은 칸위 계승 과정에서 분쟁을 일으킨 세력을 제압하고 대칸의 직속 세력을 중심으로 차하르 만호 내부의 통치 체제를 확립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요동 일대의 명 변경을 공략하여 명으로부터 교역권과 공물을 얻어냄으로써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호르친과 다섯 오톡 할하를 비롯한 좌익 몽골에서 후금과 통교하고 대칸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릭단은 이들 가운데 일부를 병탄하여 중앙집권화를 도모하였다. 릭단은 자신의 왕통이 칭기스 칸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천명하고 몽골 제국기 帝師를 배출해오던 사꺄파의 고승 샤르빠 후툭투를 초청함으로써 쿠빌라이와 팍빠가 맺었던 施主-應供僧 관계를 재현하였다.
릭단은 1627년 우익 몽골을 상대로 정복 전쟁을 전개하여 알탄 가문의 중심지인 후흐호트를 점령하였다. 1628년에는 挨不哈에서 우익 연합군을 격파한 뒤 투메드와 오르도스를 복속시킴으로써 릭단은 알탄 이래 우익으로 기울었던 주도권을 되찾는 데 성공하였다. 그 뒤로 릭단은 명으로부터 새로운 공물을 획득하였을 뿐 아니라 우익의 각 만호에 지급하던 공물까지 독점하였다. 한편, 후흐호트를 점령하고 銀佛寺를 장악한 릭단은 1629년 113권의 몽골문 황금 간주르를 자신의 명의로 완성하여 알탄 가문을 능가하는 티베트 불교 시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였다.
1630년부터 1632년까지 릭단은 興安嶺 이북으로 수차례 원정하여 아루 몽골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아루 몽골인이 후금과 호르친, 할하 등지로 투항함에 따라 릭단은 아루 몽골을 복속시키지 못한 채 원정에서 귀환하였다. 1632년 후금 측에 가담한 몽골군을 소집한 홍타이지는 릭단이 아루 원정을 떠난 사이 후흐호트를 노략하고 명 변경을 위협하여 릭단 몫의 공물을 거두어 돌아갔다. 이후 오르도스 군대를 동원하여 河西 일대를 침범하던 릭단은 1634년 촉투를 비롯한 지지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靑海 방면으로 이동하던 도중 시라탈라에서 천연두로 사망하였다.
릭단 사후 구심점을 상실한 휘하의 몽골인들이 사분오열하면서 차하르 진영은 급속히 와해되었다. 홍타이지는 릭단의 아들 에제이의 항복을 받고 傳國璽와 마하칼라像을 입수한 것을 계기로 몽골의 정권 인수를 선언한 반면, 할하의 수장들은 칭기스 혈통을 근거로 대칸의 정통성 계승을 주장하였다. 양측 모두 궁극적으로 全몽골에 대한 지배권을 쟁취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후금과 할하의 대결은 몽골 통일을 추구하였던 릭단이 남긴 유산을 상속하기 위한 경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78469

https://dcollection.snu.ac.kr/common/orgView/000000168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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