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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翰苑」 번이부의 전거자료와 편찬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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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나유정

Issue Date
2021-12-01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규장각, Vol.59 No., pp. 1-28
Keywords
翰苑, 蕃夷部, 張楚金, 東方政策, 高句麗
Description
본 논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2020년도 21세기 신규장각 자료구축사업-한국
학 학술대회 지원을 통해 翰苑연구회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공동 개최한 국외 한국학자료와 7세기 동아시아-日本 소재 唐代類書, 翰苑 번이부의 종합적 검토-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을 수정 보완한 것임.
Abstract
翰苑 번이부 편찬에서 正文과 注文작성의 중심에 있었던 찬자는 장초금이었으며 모든 注文에서 공통적으로 후한서 를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후한서 를 중심 전거자료로 활용
하였다고 파악된다. 다만 660년 당시 존재하지 않는 흉노ㆍ오환ㆍ선비ㆍ남만ㆍ서남이 등을 서술하는 데에는 후한서 의 인용 비율이 높았던 반면 고구려ㆍ신라ㆍ백제ㆍ숙신ㆍ왜 등에 대해서는
후한서 를 비롯하여 다양한 전거자료를 활용했다. 이는 翰苑 찬자의 관심에 따라 최신 자료를인용한 결과로 보인다.
조목 별 내용을 살펴보면 구조 속에서 서술하였다. 그 중찬자의 의도에 따라 신라에 대해서는 정보를 소략하게 서술하고, 고구려와 백제의 서술에서는 지
리정보를 추가하여 서술하였다. 또한 삼국에 대해서는 중국과의 조공의 예는 서술하지 않았던 반면 고구려의 경우 과거 한사군 지역이었다는 점이 강조되어 서술되었다. 이는 翰苑 에서 동이지역, 특히 고구려에 대한 정벌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서술이다.翰苑 편찬이 착수되었던 시기는 660년 3월 12일로, 655년 장손무기 정권이 물러나고 서역을 안정시킨 당이 동방으로 백제를 공격하기 시작하던 시기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張楚金은 사찬 사서인 翰苑 을 통해 동이지역 특히 고구려에 대한 정복의 당위성을 강조하여 고구려 정벌을 지지하고,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를 형성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추정된다.
ISSN
1975-6283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79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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