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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조선인의 중국관 : 甲午战后朝鲜人对华认知——基于对戊戌变法相关报道之考察
무술변법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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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채자문

Advisor
김형종
Issue Date
202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무술변법무술정변독립신문황성신문중국관
Description
학위논문(석사) -- 서울대학교대학원 : 인문대학 동양사학과, 2022.2. 김형종.
Abstract
本文旨在通过分析大韩帝国时期报刊《独立新闻》、《皇城新闻》中戊戌变法的相关报道,考察甲午战后朝鲜人对戊戌变法的评价及其对华认知。
自1998年以来,戊戌变法的相关研究即呈现出扩大化运用海外史料之特点。然现存研究所运用之海外史料,多集中于各列强国的政府文书、外交官报告及社会精英言论,而缺少对于列强国以外的、他国相关史料的挖掘。基于此种研究现状,本文欲通过对大韩帝国时期报刊中戊戌变法相关报道的分析,提供新的研究思路。进一步地,由于当时报刊对戊戌变法的评价,亦可反映并影响当时朝鲜人的对华认知。故在考察当时报刊中戊戌变法相关报道的基础上,自然可更深入地探讨,戊戌变法期间,即甲午战争之后,朝鲜人对华认知的内容及其变化。
基于上述思路,本文结合对朝鲜国内独立协会运动开展过程之考察,整理分析了《独立新闻》、《皇城新闻》中戊戌变法的相关报道;并将此相关报道,与德国、日本报刊中戊戌变法的相关报道进行了对比研究。研究发现,朝鲜报刊媒体乃创刊团体利益、朝鲜国家民族利益,东亚利益三大利益之复合承载体。且在报道戊戌变法的过程中,报刊的舆论影响力亦促发了朝鲜人对华认知内容的不断变化。进一步地,朝鲜人对华认知内容之变化,亦深刻影响了后来朝鲜的对华政策。
总体来说,戊戌政变前后,《独立新闻》、《皇城新闻》曾一度大量登载有关光绪帝生死废立、列强借机干涉清朝内政等话题的谣言。本文依据卡普费雷所提出的谣言理论,推测当时朝鲜报刊大量登载谣言的行为,极可能是意欲向朝鲜社会提示危险信息:列强在借机干涉清朝内政后,亦可能在朝鲜独立协会运动之际,趁机干涉朝鲜内政。而后,随着清朝政局逐渐恢复稳定,朝鲜报刊则始对戊戌变法进行全面回顾,其中亦不乏若清朝再度举行变法,即可实现文明富强之祈盼。可以看到,不同于极力维护、扩大其本国在华利益,主张干涉清朝内政之日本报刊、德国报刊,朝鲜报刊在试图引导舆论,以此维护其创刊团体之政治利益的同时,亦兼顾了朝鲜国家民族利益,乃至东亚利益。此外,随着独立协会政治运动的开展,《独立新闻》呈现出的褒维新,贬保守之立场、《皇城新闻》依据实学精神而对慈禧太后之政治举措所给出的较为客观的评价,以及两大新闻对戊戌变法所展现之同情、好感及认同等,则分别体现了当时朝鲜人对华认知的不同侧面。
본 논문은 대한제국기 독립신문과 황성신문이 무술변법에 대해 보도한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청일전쟁 후에 조선인들이 행한 무술변법에 대한 평가 및 대청(對淸) 인식을 고찰하려 한다.
사료 활용 범위가 확대되면서 외국의 언론 매체를 활용하여 무술변법에 대한 외국인의 인식을 고찰하는 것은 무술변법을 검토하는 새로운 연구 방식이 되었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는 연구들은 일본, 독일, 영국, 러시아, 미국 등의 열강 측의 사료를 활발히 이용하고 있을 뿐, 열강 외의 기타 나라의 사료를 사용한 것은 드문 상황이다. 동시에 독립신문과 황성신문의 대청 인식에 관한 연구들은 피상적인 내용을 살펴본 것으로, 인식이 형성된 국내외의 배경, 특정 상황 등과 결합하여 그들의 배후 동기를 추가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본 논문은 무술변법에 대한 독립신문과 황성신문의 보도 내용에 착수하여 새로운 연구의 시각을 제시하려고 하고, 나아가 무술변법 보도에서 드러난 대청 인식과 인식의 변화 과정을 고찰하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당시 조선 국내의 독립협회 운동과 결부시켜 조선 신문의 발언 동기 등을 고찰하면서, 무술변법의 보도 내용에 대해 조선 신문을 독일 신문, 일본 신문 비교함을 통해 조선 신문 보도의 특수성을 찾았다. 이 연구를 통하여, 조선의 신문은 신문의 창간 단체[독립협회]-국가와 민족[조선]-지역[동아시아] 삼자의 이익을 바탕으로 보도했고, 청조에 대한 나름의 이미지를 구축하여 조선인에게 전달하고자 하였고 이 이미지가 그들의 대청 인식, 심지어 조선의 대청 정책에 영향을 끼쳤다고 확인할 수 있다.
청일전쟁 후 독립신문은 조선 정체성을 강조하거나 독립협회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청조를 폄하하는 한편, 외침을 당하는 동양의 입장에서는 청국민의 저항을 비중 있게 서술하기도 했다. 이러한 집단-국가와 민족-지역 삼자의 이익과 청조 개혁파의 정치 주장과의 공통점 및 차이점은 독립신문이 무술변법을 관찰하는 기반이 되었다. 무술변법 시기에도 독립신문은 변법의 조치·결과를 예시로 독립협회 본연의 정치적 주장을 합리화하면서 무술변법을 자신들의 정치 활동을 위해 부여된 명분으로 삼았고, 무술변법과 독립협회 운동 실패 후에도 무술변법에 대하여 상당히 높은 평가를 부여함으로써 독립협회 운동을 회고하고 청조 정변을 사례로 본국 정부를 여전히 비판하였다. 황성신문은 초창기에 독립협회운동과 호응하여 청조를 폄하하며 조선 정부를 비판했지만 조선과의 평등 외교에 관한 변법 조치의 시행을 목도한 후에는 위 비판적 논조와는 분리된, 독립적 논술이 미래 조·청 관계의 구상에서도 보였고, 또한 실학의 정신을 발휘하여 청조의 실적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평가하였다.
전체적으로는 독립신문과 황성신문이 무술전병 전후 한때에 광서제의 생사 폐립, 열강의 청조 내정 간섭 등에 관한 소문을 대량 기재했다. 본 논문은 소문에 대한 노엘의 연구를 참고하여, 조선 신문이 소문을 기재한 것은 소문이 예시할 위험을 알아챘기 때문이리라고 추측한다. 즉 열강은 광서제 폐립을 핑계로 청조 내정을 간섭하려고 하였고, 그러한 방식대로 조선 국내의 독립협회 정치 운동을 틈타 조선의 내정도 간섭할 것이었다. 언론지를 통해 퍼진 소문은 사람들에게 그런 경각심을 주었다. 그러나 청조 정세가 안정됨에 따라 조선의 신문은 무술변법에 대한 회고에 초점을 두어, 청조의 혼란스러운 정세를 비판하는 한편 청조가 무술변법과 같은 개혁을 전개하여 근대화에 이룩할 것을 바라고 있었다. 무술변법을 관찰하는 가운데 청조에서의 본국 권익을 유지 및 확장하기 위해 청조 내정을 간섭하려는 자세로 임하는 독일과 일본의 신문에 비해, 조선 신문은 창간 단체의 정치적 이익을 바탕으로 하면서 조선과 동아시아의 이익을 어느 정도 고려하기도 하였다. 또한 독립협회 운동이 전개됨에 따라, 독립신문에서 보인 완고당을 폄하하며 개혁파를 칭찬한다는 입장과 서태후의 실적에 대해 황성신문이 내린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평가 및 무술변법에 대해 조선 신문계가 표현한 호감, 동정 등 감정선을 통해 당시 조선인의 대청 인식을 엿볼 수 있다.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83135

https://dcollection.snu.ac.kr/common/orgView/000000171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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