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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동성애 역사와 데이비드 호크니의 동성애 주제 작품 연구
A Study on the History of Homosexuality in the West and the Works of David Hockney with the Subject of Homosexu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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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안효정
Advisor
김정희
Issue Date
202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데이비드 호크니동성애월트 휘트먼콘스탄틴 카바피던컨 그랜트피지크 매거진아르카디아더블 포트레이트
Description
학위논문(박사) -- 서울대학교대학원 : 미술대학 협동과정 미술경영, 2022.2. 김정희.
Abstract
Since the 1960s, British painter David Hockney(1937-) has expressed his sexual identity with his works for about a decade. These works dealing with the subject of homosexuality started to disappear at the end of 1960s and finally ceased to appear after the middle of 1970s.
This thesis examines the aspects and changes of his works during this period in the historical context of western views on homosexuality and art. At the time he was working on the subject, homosexuality was regarded as a crime in England. Nevertheless, those works received critical and commercial recognition, making the basis for his success as an international artist. This fact is not irrelevant to the western history of culture related to homosexuality and the social atmosphere before the gay liberation movement took place in the late 1960s.
The western culture of homosexuality discussed in this study begins in ancient Greece. A homosexual relationship called “pederasty” had been institutionalized in that era. This was a practice associated with the population control policy, being represented as an idealized form through works of art and literature.
Social attitudes regarding homosexuality changed by the acceptance of Christianity. Before the authorization of Christian religion, the national ideology of the Roman empire was reflected by homosexual relationships, which means Romans as the dominant conquering their subjects and others, such as foreigners and slaves, as submissive objects. On the other hand, after Christianity, homosexuality was identified as paganism, recognized as a moral and religious deviation which had to be regulated by the law. The word “Sodomy” derived from “Sodom” in Genesis 19, became the name of the sin referring to homosexuality in the Middle age.
In Renaissance Italy, the Neoplatonists tried to revive the culture of the antiquity. The concept of homosexuality, which was reinterpreted as a “platonic love” in the context of Christian theory, also appeared as a subject of Renaissance art. Neoclassical theory and art inherited the tolerance toward homosexual themes and expression. Johann Joachim Winkelmann’s argument that contemporary culture needs to embrace and imitate the ideals of the art of antiquity implied his aspiration for a revival of classical heritage and justification for male homosexuality.
The first anti-sodomy law in England was the “Buggery Act”, which was introduced in 1533. However, it was enforced in the late 17th century when the Anglican Church and parliament gained authority after the Glorious Revolution in 1688. In the 17th century, “molly house”, which was the subculture formed by mollies, which means effeminate homosexuals, was formed in London and other metropolises in Europe. Following the national campaign against mollies, the public negative perception about homosexuals spread.
At the end of the 18th century, affected by the French Revolution, some of the European countries adopted the French law and decriminalized the sodomy law. On the other hand, England and Prussia continued to criminalize homosexual behavior, which gave rise to social debates over homosexuality. In the late Victorian era in England, attempts were made to re-establish the identity of homosexuals. The intellectuals of this period tried to change the public recognition toward homosexuality, from a debasement or an inversion to a noble and idealized relationship based on the study of Greek antiquity.
In the mid-19th century, research on homosexuality had been begun by German forensic scientists. Researchers and activists who advocated the repeal of the anti-sodomy law had argued that homosexuality is innate and universal crossing cultures and history. Based on this viewpoint, a historical study was started on the cases that can be categorized as homosexuality. The research on homosexuality had continued to the 20th century, and based on its outcomes, the perspective on homosexuality has begun to change.
When Hockney went to London to attend the Royal College of Art in 1960, he attempted to imply his sexual identity by quoting literature that expresses homosexuality in his abstract paintings based on the mainstream style of abstract expressionism. The poetry of Walt Whitman, which served as the basis for the construction of a new identity of homosexuals in the late Victorian era, was directly cited in the paintings of Hockney during 1960 and 1961.
After that, Hockney produced a series of paintings that combining the subject of homosexuality and the Pop art style. In 1961, after his first visit to New York, his works had changed significantly, in which figurative elements had been adopted to his paintings and the subject of homosexuality had begun to be expressed more directly. These changes seemed to be due to the acceptance of the influences from the New York art scene at the time.
In 1964, Hockney visited California, which was one of the centers of the homosexual culture after World War II. He produced paintings in the mid-1960s showing the “Californian manner” that were characterized by the expression of “Americanness” and “sexuality.” Furthermore, he reinterpreted themes in the art history such as “bathers” and “arcadia” and carried out experiments expressing waters in these paintings. These were connected to the paintings of Duncan Grant, a member of the Bloomsbury Group, who applied the subject of bathers and the formalist theory of Roger Fry to his works as a device to express homosexuality. In 1967, after the amendment of the Sexual Offences Act, homosexuality was partially legalized in UK. From this period, Hockney’s work shifted from works that emphasize sexual expression to ones that attempt to express same-sex relationships in the context of mainstream customs.
This study examined the attention and social significance given to the works of Hockney that could be received in the 1960s by expressing his subject of homosexuality in an era of visible change regarding the institutional perception of homosexuality. Western Culture’s perception on homosexuality influenced Hockney’s works in terms of the subject matter, and the iconography of art history dealing with this subject became the basis of the expressions in his works. This paper examined the influence of social, historical, art institutional, and formal factors on the career of the artist.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는 1960년부터 동성애자로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표현했다. 이후 약 10년간 동성애는 그의 작품의 주요 주제가 되었다. 본 논문은 서양에서의 동성애에 대한 인식과 그것을 주제로 한 미술의 역사와 함께 호크니가 표현한 동성애 주제 작품을 고찰한 연구이다.
호크니가 이 주제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하던 시기 영국에서는 동성애가 범죄로 규정되어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그가 이 주제를 다루기 시작했음에도 그의 작품은 미술계에서만이 아니라 시장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 이 작품들은 그가 국제적으로 성공한 미술가로서 부상하는 데 있어 발판이 되었다. 서양에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화하여 다른 양상을 보여온 동성애에 대한 제도적 및 개인적 의식의 역사를 고려했을 때, 위와 같은 사실은 동시대 유럽 사회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그가 법적으로 용인되지 않던 시기임에도 동성애 이슈를 공적으로 표현하게 된 것과 그것이 미술계의 긍정적인 수용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1960년대의 변화한 의식과 게이 해방 운동으로까지 이어진 사회 분위기와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서양에서 동성애에 대한 의식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기록되었다. 이 시대에는 “페더레스티”라고 불린 성인 남성과 소년 사이의 동성애 관계가 관행화되어 있었다. 반면 로마 시대 동성애에 대한 공적 견해와 입장은 기독교 공인 전과 후가 다르다. 기독교 공인 전에 로마인은 동성애 자체는 용인하면서 정복자 입장에서 수동적인 역할을 하는 남성을 비난했던 반면 기독교 공인 후에는 동성애에 대한 그리스의 관습을 종교적 입장에서 이교도적인 것으로 탄압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문화가 재조명되었고, 동성애 개념이 기독교적 의미를 내포한 정신적인 사랑으로 재해석되면서 미술의 주제로도 등장했다. 그 무렵 영국에서는 이 국가에서의 최초의 반동성애 법인 “버거리 법”이 도입되었다. 이 법이 실질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한 것은 명예혁명(1688)의 결과로 성공회와 의회가 권력을 잡게 된 17세기 후반이다. 이 시기 대도시인 런던에는 동성애자들이 모여 하위문화를 형성한 장소인 “몰리 하우스(molly house)”가 등장했다. 한편 18세기 중반 이후 유행하기 시작한 신고전주의 이론과 미술은 동성애에 대한 관용적 태도를 수반했다.
18세기 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아 유럽 대륙의 국가들에서는 동성애가 합법화되었다. 그러나 영국과 독일의 프로이센에서는 법적 제재가 지속되었고, 이에 따라 그것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이어졌다.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는 동성애자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축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지식인들은 그리스 고전 연구를 바탕으로 동성애를 타락이나 도착이 아닌 고귀하고 이상화된 관계로 보는 새로운 시각을 확립하고자 했다. 19세기 중반에는 독일을 시작으로 동성애에 대한 의학적 연구가 시작되었다. 반동성애 법 폐지를 옹호하던 연구자와 운동가들은 동성애가 선천적인 것이며 문화와 역사를 횡단하는 보편적인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동성애로 범주화될 수 있는 역사적 사례들에 대한 연구는 위의 이론을 근거로 하여 시작된 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연구는 20세기까지 이어졌고, 그 결과들을 토대로 그것에 대한 사회적인 관점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역사는 호크니가 1960년대에 제작했던 동성애 주제의 작품들과 연결될 수 있다. 1960년 왕립 미술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런던에 간 호크니는 당시 주류 양식이었던 추상 회화에 동성애를 다룬 문학 작품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그의 성 정체성을 암시하고자 시도했다. 후기 빅토리아 시대에 새로운 동성애자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기반이 되었던 월트 휘트먼의 시는 호크니가 이 주제를 다루기 시작했을 무렵의 회화에 직접적으로 인용되었다. 이후 그는 팝아트 양식에 동성애 주제를 접목시킨 회화 연작을 제작했다. 1961년 여름에 뉴욕을 처음으로 방문한 후 그의 작품은 형상적으로 바뀌었고, 이와 동시에 동성애 주제도 직접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이는 뉴욕 예술계와 동시대 동성애 문화의 영향을 수용함에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
1964년 호크니는 당시 동성애 문화의 중심지 중 하나였던 캘리포니아를 방문했다. 그가 이 도시를 주제로 1960년대 중반에 제작한 회화는 “캘리포니아 방식”으로 불리는데, 이 작품의 특징은 ‘미국적인’ 소재와 함께 성적인 측면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이 시기 작품들을 통해 “목욕하는 사람들”과 “아르카디아”와 같은 미술사의 주제를 재해석해 동성애 주제와 연결시키는 동시에 물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조형적 실험도 진행했다. 이는 블룸즈버리 그룹의 일원이었던 던컨 그랜트가 동성애를 작품에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위의 주제와 형식주의 이론을 사용했던 것과 연결된다. 1967년 영국에서 성범죄법이 개정되며 동성애가 부분적으로 합법화된 이후 호크니의 작품은 섹슈얼리티를 강조하던 것에서 동성 관계를 주류의 맥락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으로 바뀌어 갔다.
본 논문은 서양의 동성애 역사를 개괄하는 동시에 그것에 대한 사회적, 제도적 입장이 전환되던 시기에 호크니가 발표한 작품이 지닌 사회적 의미를 고찰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를 통해 사회적, 역사적, 미술 제도적, 형식적 요인이 미술가의 작업 방식과 주제 및 표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국내 학계에서 광범위하게 다뤄지지 않은 동성애 주제를 고찰함으로써, 연구 영역의 확장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본 논문의 의의를 찾고자 한다.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83291

https://dcollection.snu.ac.kr/common/orgView/000000170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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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Fine Arts (미술대학)Program in Arts Management (협동과정-미술경영전공)Theses (Ph.D. / Sc.D._협동과정-미술경영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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