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cations

Detailed Information

서울을 부유(浮游)하는 일본(인) : ソウルを浮遊する日本(人) -1980年代日本の「韓国ブーム」における 中上健次と李良枝の「私」探しのナラティブ研究-
1980년대 일본의 한국 붐 속 나카가미 겐지(中上健次)와 이양지(李良枝)의 자아 찾기 서사 연구

Cited 0 time in Web of 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Authors

국승인

Advisor
손유경
Issue Date
202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한국 붐나카가미 겐지이양지세키카와 나쓰오『헤이본 펀치』포스트모던타자소비부유실존적 불안끝나지 않는 일상
Description
학위논문(석사) -- 서울대학교대학원 : 인문대학 협동과정 비교문학전공, 2022.2. 손유경.
Abstract
本研究は1980年代日本における「韓国ブーム」という現象を分析することで、当時の社会·文化的コンテキストを把握し、さらには「韓国ブーム」での中上健次(1946~1992)と李良枝(1955~1992)における「私」探しのナラティブを比較·考察した。これは「日本(語)文学史」で固定的に読解されてきた中上健次と李良枝文学を改めて読み直す試みである。そしてその「消費」と「他者」という視座を通して、最終的には現代社会の「私」探しの(不)可能性を問うことを目的とした。
2章では「韓国ブーム」に関する現象を具体的に分析·考察した。世代、ジェンダー、ジャンルを基準とし、1980年代の「韓国ブーム」を二つの時期に区分した。前期は団塊の世代に属する男性エリートらのルポルタージュを主な分析対象とした。関川夏央の『ソウルの練習問題』(1984)や大衆雑誌『平凡パンチー大特集かっこいい韓国』(1985.1)などは団塊の世代の「コミュニケーション方式」を共有しつつ、「楽しい韓国」を描き出した。学生運動の時代が終わった社会の中で「非-歴史」、「非-理念」、「非-構造」的な「ふり」を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彼らにとって「韓国ブーム」は新たなコミュニケーションの場だった。彼らは表面的には韓国の大衆文化を堪能したが、その裏には「鏡としての韓国」、すなわち隣国を鑑として日本(人)が抱えている矛盾を批判するという隠された意図を見出すことができる。
後期は団塊の世代よりも下の世代にあたる女性留学生の留學記を主な分析対象とした。彼女ら皆社会経験を経て、社内におけるガラスの天井や日常の無力さから脱出するため留学に取り組んだ。彼女らは韓国での留学経験を「ミニコミ」や「同人誌」などに発信することで、パフォーマティヴ·ライティングを行なった。それはネガティブなイメージで満たされていた「韓国」に留学する「変わった女性」という独特なイメージを取る一方、女性や在日朝鮮人、環境などに関する問題を訴えつづけることだった。従って、1980年代の「韓国ブーム」が以前の世代とは異るかたちで韓国という「他者」と接したことが説明できる。
3章では中上健次の韓国体験の結果とも言える『物語ソウル』(1984)における失敗に注目した。中上は彼の独特な文学世界である「路地」をソウルの「永登浦(ヨンドゥンポ)」へ広げ、母権神話を作ろうとしたが、文壇から徹底的に無視された。韓国の伝統芸能(パンソリ、仮面劇)に関心を持っていた中上は、当時日本で流行っていた文化人類学や記号論などを用いて、韓国を「兩班-被差別民」という「中心-周縁」の構造で、理解しようとした。さらに彼の関心は「東洋」に関する思惟にまで広がった。また、中上は1984年「韓国ブーム」に積極的な関心を示したことでも知られる。写真家である荒木経惟や篠山紀信と同行し、発行した写真集は韓国を「表徴の帝国」として描き出した。彼にとって韓国は世界の周縁、真剣な連帯の場であり、文学的インスピレーションをもたらすダイナミックな遊戯の場でもあった。本稿は中上が「反近代」や「脱中心」という「時代的使命」と不可解な他者を知る「戯れ」という矛盾した態度を持っていたことを明らかにし、その真面目さと遊戯の往復運動が彼の実存的不安によるものだということを明らかにした。
4章では李良枝を取り巻くディスクールを解体することから議論を始めた。李良枝は1980年代の「韓国ブーム」をはじめ、ポストモダン的な多元化主義(マイノリティーの発見)、在日朝鮮人2世における知識人の公論参与の拡大など、多数のディスクールが錯綜し、一種の「象徴」として消費された人物である。しかし、李良枝の関心は終始「私」という問題を究明することに一貫し、「徹底的に個人的な問題だから、徹底的に普遍的でもある」という命題を実践し続けていた。本稿は「刻」(1984)を分析し、彼女の文学の中に「不幸な他者への眼差し」と「存在と時に関する探求」が並んで現れることを読み解いた。これは彼女が「私」を探すために設定した課題であり、小説はその実践の過程として書かれた。代表作である「由熙」(1988)に至っては、李良枝は「由熙(ゆき)」という他者を前面に立たせ、韓国人の話者から「言葉の杖」を奪い取り、彼(女)の「心」に永遠に残る他者の「顔」を刻み込もうとした。最後に「刻」から「由熙」へとつながる4年間の物語を比輸的に込めた未完成の遺作である『石の聲』を分析し、「個人的探求」とともに「不幸の連帯」という絶え間ない実践を通じてこそ「私」を探し出せるという「私」探しの(不)可能性を見いだすことができる。
本稿は1980年代の「韓国ブーム」という社会·文化的コンテキストのうち、二人の作家を比較することで、彼らが時代的転換期としての「現在」の本質を問いていたことを明らかにした。彼らが実存的不安の中で浮遊しつづけた最後に、出会ったのが韓国という「他者」である。彼らは1980年代の日本では見つけることのできない答えを「韓国」に求めようとしたのである。しかし、韓国という「他者」は何一つ答えてくれなかった。中上健次は政治的連帯と興味本位の遊戯を同時に得ようとし、無限の可能性としての韓国を求めたが、これは『物語ソウル』とともに挫折した。一方、李良枝は「他者への眼差し」と「存在と時への探求」という実践を繰り返し続け、「私の中のもう一人の私」、すなわち不可解な「他者」を認めることで、「複数の普遍性(たち)」の(不)可能性を残した。
1980年代の「韓国ブーム」における中上健次と李良枝の取り組みは、後期資本主義社会で浮遊する実存と他者の問題を改めて考察する大切な契機になる。
본고는 1980년대 일본의 한국 붐(韓国ブーム) 현상을 분석함으로써 당대의 사회문화적 문맥을 파악하고, 나아가 한국 붐 속 나카가미 겐지(中上健次, 1946~1992)와 이양지(李良枝, 1955~1992)의 자아 찾기 서사를 비교·분석했다. 이는 일본(어)문학사에서 고정적으로 독해되어 온 이들의 문학을 새롭게 읽고자 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소비와 타자라는 시좌를 통해, 궁극적으로 현대사회의 나 찾기의 (불)가능성을 가늠하고자 했다.
2장에서는 한국 붐에 대한 현상을 구체적으로 분석·고찰해 보았다. 본고는 세대, 젠더, 장르에 따라 1980년대 한국 붐을 두 시기로 분류했다. 첫 번째 시기는 단카이 세대에 속하는 남성 지식인들의 체험기가 주를 이뤘다. 세키카와 나쓰오(関川夏央)의 『서울 연습문제(ソウルの練習問題)』(1984)와 잡지 『헤이본 펀치-대특집 멋진 한국(平凡パンチ-大特集かっこいい韓国)』(1985.1) 등은 단카이 세대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공유하면서 즐거운 한국을 그려냈다. 운동의 시대가 끝난 일본 사회 속에서 비-역사, 비-이데올로기, 비-구조적인 척을 해야 했던 이들에게 한국 붐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장이 되었다. 이들은 겉으로는 한국의 대중문화를 탐닉하지만, 그 안에는 거울로서의 한국, 즉 이웃나라를 거울삼아 일본(인)이 안고 있는 모순을 반성하자는 의도를 숨기고 있었다.
한편 두 번째 시기는 단카이 세대의 아랫세대인 여성 유학생들의 유학기(留學記)가 주를 이뤘다. 이들은 모두 사회생활을 경험하였고, 유리천장과 일상의 무기력함 속에서 유학을 감행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한국 유학 경험을 미니코미(ミニコミ), 동인지를 통해 발신함으로써, 수행적 글쓰기를 행했다. 그것은 부정적 이미지가 가득한 한국에서 유학하는 별난 여성이라는 차별화된 이미지를 취하는 한편, 여성, 재일조선인, 환경 등에 관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발화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본고는 1980년대의 한국 붐이 이전 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한국이라는 타자와 접촉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3장에서는 나카가미 겐지의 한국 경험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 서울(物語ソウル)』(1984)의 실패에 주목해 보았다. 그는 자신의 문학 세계인 골목(路地)을 서울 영등포로 확장시켜 모권 신화를 축조해 내고자 했지만, 문단으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한국의 전통예능(판소리, 탈춤)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카가미는 당대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던 문화인류학, 기호론 등의 최신 이론을 가져오면서 한국을 양반-피차별민이라는 중심-주변의 구조로 이해했다. 이어 그의 관심은 동양에 대한 사유로까지 확장된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나카가미는 1984년 한국 붐 현상에 발맞추어, 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사진작가인 아라키 노부요시(荒木経惟), 시노야마 기신(篠山紀信)과 동행하여 펴낸 사진집들은 한국을 기호의 제국으로 그려냈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한국은 세계의 주변부이자 진지한 연대의 장소이기도 했으며, 문학적 영감을 가져다주는 다이나믹한 유희의 장소이기도 했다. 본고는 나카가미가 반근대와 탈중심이라고 하는 시대적 사명과 불가해한 타자를 알아가는 즐거움이라고 하는 모순된 태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밝혀냈으며, 이 진지와 유희의 왕복운동은 그의 실존적 불안에서 기인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4장에서는 이양지를 공고하게 둘러싸고 있는 담론을 해체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했다. 이양지는 1980년대 한국 붐을 비롯하여, 포스트모던적 다원주의 담론(소수자의 발견), 재일조선인 2세 지식인들의 공론장 참여 확대 등 다수의 담론들이 착종하여, 하나의 상징으로 소비된 인물이다. 그러나 이양지의 관심은 시종일관 나라고 하는 문제를 탐구하는 것에 있었으며, 그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문제이므로, 철저하게 보편적이라는 명제를 실천해왔다. 본고는 「각(刻)」(1984)을 통해 그의 문학에서 불행한 타자에 대한 응시와 존재와 시간에 대한 탐구가 병렬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그가 나를 찾기 위해 설정해 놓은 과제였으며 소설은 그 실천의 과정이었다. 대표작인 「유희(由熙)」(1988)에 이르러, 이양지는 유희라는 타자를 내세움으로써, 한국인 화자에게서 말의 지팡이를 빼앗고, 그의 마음에 영원히 남을 타자의 얼굴을 아로새기고자 시도했다. 마지막으로 「각」에서 「유희」로 이어지는 4년간의 서사를 비유적으로 담고자 한 미완성 유고작 『돌의 소리(石の聲)』를 살펴보면서, 개인적 탐구과 함께 타자와의 불행의 연대라는 끊임없는 실천 속에서 나가 발견될 수 있다는 나 찾기의 (불)가능성을 확인해보았다.
본고는 1980년대 한국 붐이라는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두 작가를 비교함으로써, 이들이 시대적 전환기로서의 현재의 본질을 묻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실존적 불안 속에서 부유(浮游)한 끝에 발견한 것이 한국이라는 타자였다. 즉, 이들은 1980년대 일본에서 찾을 수 없는 답들을 한국을 통해 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라는 타자는 그 무엇도 답해주지 않았다. 나카가미 겐지는 정치적 연대와 흥미 본위의 유희를 동시에 얻고자 하는 무한한 가능성으로서의 한국을 욕망하지만, 이는 『이야기 서울』과 함께 실패했다. 한편 이양지는 타자에 대한 응시와 존재와 시간에 대한 탐구라는 실천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내 안의 또 다른 나, 즉 불가해한 타자를 인정함으로써, 복수의 보편(보편들)의 (불)가능성을 열어놓았다.
1980년대 한국 붐 속 나카가미 겐지와 이양지의 작업은 후기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부유하는 실존과 타자의 문제를 되짚어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83296

https://dcollection.snu.ac.kr/common/orgView/000000169183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Altmetrics

Item View & Download Count

  • mendeley

Items in S-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