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성평등 수업 공동 설계 및 개발 경험에 대한 질적 연구

Abstract

지난 20여 년간 학교 성평등교육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 많은 연구가 수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교사들은 여전히 학교 성평등교육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제는 지금까지 제안된 학교 성평등교육의 개선 방안이 현장에서 어떻게 실현 가능할 것인지를 탐색하는 실천적 차원의 연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 현장인 학교 성평등교육의 맥락을 살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학교 성평등교육은 구체적인 운영 지침을 제공하는 표준 교육과정의 부재, 성평등한 관점이 부족한 교과서, 교사들의 낮은 성평등 의식, 학교 안팎의 성평등교육에 대한 반발 등으로 적극적인 실천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위의 논의에 기반하여 나는 지난 수년간 성평등교육을 위해 함께 수업자료를 만들고 공유해 온 A 연구회 교사들의 경험을 연구 주제로 삼았다. 이들의 활동을 살펴봄으로써 성평등교육 실천이 어려운 지금의 상황에서도 유의미한 성평등 수업이 어떻게 실행 가능한지 확인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내가 설정한 연구 문제는 교사들이 구성하는 초등 성평등 수업 공동 설계 및 개발 경험의 의미는 무엇인가?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사들의 초등 성평등 수업 공동 설계 및 개발 활동의 모습은 어떠한가?, 둘째, 교사들은 초등 성평등 수업 공동 설계 및 개발 과정에서 무엇을 경험하는가?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하면서 첫째, 참여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초등 성평등 수업자료를 만드는지, 만들어진 수업자료의 모습은 어떠한지 살펴볼 것이다. 둘째, 참여자들이 이 과정에서 경험한 것들을 앞에서 언급한 학교 성평등교육의 맥락과 함께 분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의 내용을 종합하여 참여자들이 구성하는 초등 성평등 수업 공동 설계 및 개발 경험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한다. 이 연구의 방법론은 페미니스트 질적 연구이다. 페미니스트 질적 연구는 사회적 타자들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해방적 지식을 생산하여 전반적인 사회변화와 사회정의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닌다(Hesse-Biber & Leavy, 2007). 나는 이 연구가 남성중심적 관점으로부터 타자화되어 온 학교 성평등교육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타자화 과정의 변화 가능성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스트 질적 연구 방법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였다.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주된 자료 수집 방법으로는 종속된(subjugated) 목소리에 접근할 때 매우 유용하다고 알려진 심층면담을 사용하였고, 관찰과 현지 조사를 함께 수행하여 연구의 신빙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이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초등 성평등 수업 공동 설계 및 개발 활동은 참여자들의 수업자료가 공동의 수정을 거쳐 꼭 필요한 자료가 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참여자들은 수업자료의 단어부터 사진까지 모든 요소를 함께 검토하여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었다. 자료는 수업 내용의 사실 여부에 기반하여 수업 포인트가 잘 전달되는 방향으로 수정되었다. 이와 더불어 이 수업자료가 온라인에 공유되었을 때, 공동 수업 설계 및 개발 활동에 참여하지 못했을 사용자들이 수업 의도를 왜곡하지 않도록 상세한 안내를 덧붙였다. 참여자들이 만든 성평등 수업자료는 성평등한 개인과 사회로의 변화를 일으키는 데에 목표를 두고, 이에 도달하기 위해 현실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내용과 학생들이 성평등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방법으로 개발되었다. 둘째, 초등 성평등 수업 공동 설계 및 개발 경험은 참여자들이 성평등 수업 공동 설계 및 개발의 어려움을 연대를 통해 극복하여 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나는 참여자들의 경험이 성평등교육에 대한 표준 교육과정과 성평등한 관점을 지닌 교과서의 부재, 성평등교육에 대한 반발 등 학교 성평등교육의 맥락으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참여자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을 자원으로 삼아 이들의 경험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먼저 참여자들은 성평등 수업 공동 설계 및 개발 활동에 참여하면서 어려움을 경험하였다. 그 원인은 첫째 성평등(교육)에 대한 참여자들의 가치관 차이, 둘째 성평등교육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공식적인 표준 교육과정의 부재, 셋째 성평등교육에 대한 반발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참여자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역량에 의존하여 수업을 설계하고 개발해야 했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그들이 감내해야 한다는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었다. 두 번째 주제인 연대는 참여자들이 위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이었다. 참여자들은 안전한 공간에서 수업자료를 함께 수정하고 수업 후기를 공유하며 단독 수업 설계 및 개발에서 느꼈던 불안을 해소할 수 있었다. 또한, 공동 활동으로 인한 자발적 강제성 덕분에 체력적·정신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주제인 성장은 참여자들이 연대를 통해 어려움을 이겨낸 결과이다. 참여자들은 성평등 수업 공동 설계 및 개발 활동의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여 성평등 수업을 충분하게 준비할 수 있는 풍부함을 갖추었다. 그리고 이렇게 강화된 개인의 역량에 기반한 유의미한 성평등 수업을 통해 성평등한 사회로의 변화를 추구하였다. 셋째, 앞의 내용을 종합하여 교사들이 구성하는 초등 성평등 수업 공동 설계 및 개발 경험을 임파워먼트(empowerment)로 해석하고자 하였다. 참여자들의 역량 강화는 집단적인 움직임을 통해 사회변화로 나아가고 있었고, 이러한 경험 자체가 이들의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참여자들의 임파워먼트를 전문성, 의식화, 세력화의 개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먼저, 참여자들은 수업 공동 설계 및 개발 활동이라는 일종의 실천을 통해서 수업 설계 및 개발 전략을 습득하고 성평등 수업에 대한 실천적 지식을 구성하여 전문성을 함양하였다. 다음으로, 참여자들은 자신의 무력한 위치가 권력 관계의 불균형으로 인한 사회구조적 문제임을 알게 되어, 이들의 실천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사회적인 차원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깨닫는 의식화를 경험하였다. 그리고 의식화는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 사회변화를 이끌고자 하는 세력화로 이어졌다. 참여자들은 성평등 수업을 설계 및 계발하여 기존 학교 교육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성평등 수업이라는 새로운 판을 짰다. 그리고 자신들이 만든 수업자료를 온라인에 공유하여 그 판을 키워나갔다. 참여자들은 이를 통해 성평등 수업이 타자화되어있던 기존 질서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