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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 연간 당 현종의 불교 정책 : 开元年间唐玄宗的佛敎政策 : 以󰡔御注金刚经󰡕的成书背景为中心
『御注金剛經』 찬술 배경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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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수빈

Advisor
조성우
Issue Date
202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唐玄宗佛敎『御注金剛經』『金剛般若波羅蜜經』御注三經房山石經
Description
학위논문(석사) -- 서울대학교대학원 : 인문대학 동양사학과, 2022. 8. 조성우.
Abstract
唐 玄宗(李隆基, 685-762)은 開元 2년(714) 정월 전국의 僞濫僧尼를 조사하여 還俗시킬 것을 명했다. 현종은 태평공주 일파를 숙청한 후 先天 2년(713) 십이월에 와서야 개원으로 연호를 바꾸고 진정한 치세의 시작을 알릴 수 있었다. 익월이 되자마자 대규모의 단속을 시행했다는 점에서 현종이 불교로부터 파생되는 사회적 병폐 해소를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시작으로 개원 연간 20여 년에 걸쳐 사찰 건립이나 포교 활동 등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이어졌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일련의 불교 肅正策을 開元의 治를 이룬 당조 개혁의 일환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현종이 불교 교단을 비롯한 사상계를 자신의 치세에 맞게 재편한 작업에 있어 그 지향점과 결과가 개원 23년(735) 찬술한 『御注金剛般若波羅蜜經』으로 집대성된 것으로 간주하였다.
이 글에서는 일차적으로 개원 연간의 시대상을 바탕으로 현종이 『御注金剛經』을 찬술하기에 이른 경위와 목적을 심층적으로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에 Ⅰ장에서는 현종 재위기에 발효된 불교 관련 주요 조칙들을 통해 현종의 불교 정책을 정리하고, 소위 抑佛 정책으로 분류되는 조치들의 실상을 살펴보았다. 개별 조칙의 세부 내용과 대상을 검토한 결과 불교의 활동을 억제하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 목적 자체는 종교 탄압보다는 정치·사회·경제상의 실익을 추구함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Ⅱ장에서는 앞선 장에서 정리한 조칙 중 신앙·사상에 관련된 정책을 조명하고, 어주삼경의 찬술 정황과 서술 방식상의 공통점·차이점을 도출하였다. 『御注孝經』·『御注道德經』에 대비할 때 『御注金剛經』은 경문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부처의 권위를 낮추는 등 비전통적이고 회의적인 서술 태도를 보였으며 교리에 대해 깊은 이해를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金剛經』의 수지·독송이 제공하는 복덕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관심을 보인 점을 알 수 있었다.
이 점에 착안하여 Ⅲ장에서는 어주의 대상으로 『金剛經』을 선정한 사실과 당조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金剛經』 신앙을 연결지었다. 개원 연간 당시 『法華經』·『華嚴經』 등 전통적인 권위의 경전을 제치고 『金剛經』에 불경의 대표라는 지위를 부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현종은 武周革命과 復唐이라는 혼란의 시기를 겪은 장안에서 즉위하여 사회를 안정시킬 새로운 사상적 흐름을 필요로 하였다. 측천무후 시기에는 역성혁명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말세적 구세주 신앙과 『大雲經』을 내세웠다면, 현종은 이에 대비되는 현세적 기복 신앙과 『金剛經』을 대체제로 발굴하였다.
현종은 개원 연간 불교를 황권의 기반으로 편입하기 위하여 그 체제·사상을 모두 개조하고자 하였다. 때문에 즉위 직후에는 각종 불교 숙정책을 시행하여 교단을 정비하였으며, 비교적 최신의 불교 유행이었던 『金剛經』 신앙을 장려하기 위한 『御注金剛經』을 찬술하였다. 이러한 『御注金剛經』의 찬술 경위·의도는 이후 당조에서 어주 및 『金剛經』이 수명 연장을 기원하는 의식 등에서 활용된 양상을 통해 재확인할 수 있다.
唐玄宗于开元二年正月下令搜括全国的伪滥僧尼,并强制他们还俗。由于太平公主势力的影响,唐玄宗事实上直到先天二年才得以改元,从此正式开始自己的治世。在肃清太平公主残存势力的翌月,唐玄宗就迫不及待地开始着手解决由佛教的过度兴盛带来的经济、社会等各种问题,由此唐玄宗对这一问题的重视可见一斑。这也正是玄宗朝开元二十余年间,对佛教寺院建设以及活动遏制的开端。本文即将唐玄宗对佛教的这种肃正策看作是开元盛世的诸多改革政策之一。并且力求能够证明,玄宗于开元二十三年亲自编写《御注金刚般若波罗蜜经》,正是出于想要将佛教等宗教界收归己用的目的。
本文首先深入探讨了《御注金刚经》编撰的过程以及目的。第一章主要分析了玄宗在位期间所颁布的佛教政策,并且对既有研究中定义为抑佛政策的性质进行了再检讨。通过这一过程得出的结论是:尽管玄宗的这些佛教政策一定程度上可以看作是对佛教活动的抑制,但实际上的出发点并不是对宗教的弹压,而是出于政治、社会以及经济等多方面的考量。
第二章则主要结合对佛教政策中,信仰方面政策的分析,说明了 御注三经之间在撰写情况和方式上的差别。相较于《御注孝经》和《御注道德经》,《御注金刚经》中的注释更倾向于有意降低佛菩萨的权威以及对经文持有怀疑的态度,而不是注重理解教义。尽管如此,玄宗仍旧对持有和诵读《金刚经》能够获得福报这一观点持肯定的态度。
以前两章为基础,在第三章中主要分析了玄宗在众多佛经中选择《金刚经》的原因。《金刚经》在当时相较于其他佛经,受众最为广泛,并且力压《法华经》与《华严经》在当时成为了佛经的代表,无疑成为了玄宗选择它的最主要原因。为了适应武周政权覆灭,唐朝刚刚恢复的混乱政局,如同武则天利用《大云经》来合理化自己的即为一样,玄宗在当时需要一个能帮助自己完成霸业的,宗教政策。
玄宗在开元年间为了将佛教收归己用,纳入皇权统治之下,改造了当时佛教界的体制和思想。除了颁布各种肃清策之外,他还选取当时最为流行的《金刚经》,以此为基础撰写了《御注金刚经》。从唐朝后世人们用《金刚经》祈求长寿等的活动中也可以看出《御注金刚经》的编撰经过和意图。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88445

https://dcollection.snu.ac.kr/common/orgView/000000173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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