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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부(赤壁賦)를 누리는 땅 : Chibi Fu赤壁賦 and Chibi of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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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종묵

Issue Date
2020-03
Publisher
동아인문학회
Citation
동아인문학 No.50, pp.29-64
Abstract
동아시아에서 고전의 지위를 획득하고 일상생활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친 중국문학작품들이 있다. 이러한 고전은 중국 일국이 아닌 동아시아 제국의 고전으로 대접받고 또 그렇게 연구되어야 한다. 주거문화의 전형이 된 도연명(陶淵明)의 와 유흥문화의 모범이 된 소동파(蘇東坡)의 가 그러한 예다. 조선의 문인들은 의 풍류를 재현하는 자리에서 를 외웠고 또 그러한 풍류를 형상화한 문학 작품에서 의 고사와 표현을 거듭 차용하였으며, 명필은 를 필사하였고 시인은 의 글자를 뽑아 집자시(集字詩)를 지었다. 를 읽고 그 감상을 기록하거나 모방한 작품도 창작하였다. 는 그림으로도 향유되어 안견(安堅), 이징(李澄), 김홍도(金弘道) 등의 작품이 알려져 있으며 그릇에 의 내용을 그려 넣는 적벽주발(赤壁周鉢)도 유행하였다.
의 위력이 이러하기에 의 풍류가 조선 사람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가 제작된 임술년이 되면 문인들은 7월이나 11월 기망을 기다렸다. 적벽이 아니라도 한강의 잠두봉처럼 절벽이 있는 곳이 붐볐거니와, 절벽이 없어도 강물이 흐르는 곳이면 배를 띄웠다. 물론 적절한 나이에 임술년을 맞는 것조차 쉽지 않았기에 간지에 임이나 술이 들어가거나 그렇지 않고 그냥 7월 16일이나 11월 16이 되면 강가로 달려가 뱃놀이를 즐겼을 정도다.
이 논문은 의 풍류를 재현한 조선의 적벽에 주목하였다. 조선의 적벽은 여러 곳이 있었지만 임진강과 동복에 있는 것이 가장 명성이 높았다. 당연히 적벽이 있던 임진강이나 동복천은 적벽강으로도 불렸다. 이러한 곳에는 협선(挾仙), 포월(抱月), 무진(無盡), 망미(望美) 등 에 보이는 구절을 이용하여 땅의 이름으로 삼아 소동파의 적벽으로 만들었다. 특히 동복에는 김부륜이 1585년 현감으로 부임하여 협선루와 포월대를 지었다. 그 인근에 무진루와 망미정이라 이름 붙인 누정도 있었는데 역시 에서 이름을 딴 것이었다. 동복의 적벽과 함께 가장 명성이 높았던 임진강의 적벽도 소동파의 를 재현한 공간이었다. 소동파를 이르게 하는 내소정(來蘇亭)이 명소로 알려졌고 물과 달과 같은 의 핵심을 표방한 수월정(水月亭)도 그 곁에 있었다. 이러한 이름의 누정은 조선 도처에 있었으니 가히 조선 천지가 의 땅이라 할 만하다.
ISSN
1598-6888
URI
https://hdl.handle.net/10371/198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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