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에 대한 새로운 시선 - 크레티앵 드 트루아의 『그라알 이야기 Le Conte du Graal』를 중심으로

Abstract

본 연구는 중세 기사 소설에 나타난 새로운 유형의 환대 서사를 구조화하고 그 의미를 추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환대에 대한 중세의 새로운 관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은 크레티앵 드 트루아의 『그라알 이야기』다. 본 연구는 그중에서도 환대의 중단 장면에 주목한다. 손님에게 베푼 환대를 거둬들이는 장면은 기존 환대 서사와는 차별화되는 새로운 서사구조에 편입되어 있는 바, 그 주요 구성요소는 슬픔에 잠긴 환대자와 하지 않은 질문의 모티프다. 타자를 기꺼이 맞이하고 그에게 필요한 것을 베푸는 자이자, 타자로부터 구호를 기다리는 자로서의 양면성을 갖는 환대자를 통해 『그라알 이야기』는 손님에 대한 주인의 환대와 손님에 의한 주인의 구호로 이루어진 상호적 환대의 지평을 제시한다. 상호적 환대를 위해선 상호적 자비가 필요하되, 이 소설에서 강박적으로 되풀이되는 하지 않은 질문의 모티프는 그 지점에서의 결여를 의미한다. 유력자의 모습에 가려진 고통받는 자, 타인의 고통에 무심한 편력기사를 다양하게 변주한 『그라알 이야기』 속 환대 에피소드들은 거듭된 실패를 거쳐 마침내 길 가는 자가 일방적인 환대의 대상 너머 고통 받는 자를 인지하고 구호하는 자비의 주체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이 소설은 오직 자비에 의해 추동되는 기사도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보여주면서 세속적 기사도에서 영적 기사도로 이행해가는 새로운 기사 소설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