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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秉岐의 修學과 學術 活動에 대한 재검토 - 『가람일기』를 중심으로 - : Reexamination of Yi Byeong-gis learning and academic activities - Focusing on his diary Garamilg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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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황재문

Issue Date
2023-12
Publisher
진단학회
Citation
진단학보 No.141, pp.129-161
Abstract
가람 이병기는 근대 한국학 연구자의 첫 세대에 속하는 인물이다. 다만 해외 유학이나 대학 교육 등을 경험하지 못하고 사범학교를 졸업하여 교사 생활을 했으니, 적어도 학업 측면에서는 전공으로 세분화된 근대적 학문의 방법론을 익히지 못한 과도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학업의 실상이 분명치 않은 점이 있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삭제되지 않은 완전한 형태의 『가람일기』가 간행되었으므로, 이를 활용하여 근대적인 학술 활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들을 단편적이나마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사범학교 시절에는 정규 교과 이외에 수학과 영어를 따로 학습하였고, 한글 연구를 위한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보통학교 교사 시절에는 법학, 최면술과 같은 근대적 학문에 관심을 보이고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탐독하며 고서화에 대한 식견을 높였다. 이를 통해 한국학 및 근대 학문에 대한 지식을 얻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병기는 1919년에 다시 상경한 이후 조선불교회나 조선어연구회에서 활동하는 한편으로 동광학교와 휘문학교의 교사로 근무하는데, 이와 함께 연구 모임에 참여하거나 시조 강연 등의 외부 활동을 펼치고 가요연구회나 조선문흥회와 같은 학술적인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병도나 다다 마사토모(多田正知) 등 근대 학문의 방법론을 익히고 대학 제도에 참여한 학자들과 상호보완적인 교류를 했던 것으로 확인되는데, 이를 통해 근대적인 학문 제도에 대한 이해를 갖춤으로써 진단학회와 같은 근대 대학 제도에 기반을 둔 학술 모임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장차 연구에 대한 조언이나 교육을 통해 대학에서의 학술 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판단된다. 이는 근대적인 대학 제도와 다소 거리를 둔 과도적인 수학의 과정을 거친 이병기가 초기 한국학의 주요 연구자로 인정받게 된 경로의 일단이라고 할 수 있다.
ISSN
1013-4719
URI
https://hdl.handle.net/10371/203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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