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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경화사족(京華士族)의 자선(慈善) 의국(醫局) 구상* - 홍길주의 용수원(用壽院)을 중심으로 : Idea of a Charity Hospital by Gyeongwha Sajok(京華士族) in Late Joseon Dynasty: Focus- ing on Hong Gil-jus Yongsuwon(用壽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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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호

Issue Date
2022
Publisher
서울학연구소
Citation
서울학연구 No.88, pp.1-36
Abstract
홍길주(1786~1841)는 19세기 전반을 갱장이 다급한 시기로 인식했다. 조선후 기 사회는 부와 관직의 분배가 일부에 편중되었고 이로 인해 다양한 문제들이 불 거지고 있었다. 특히 19세기 초 계속되었던 기근과 역병의 유행은 인민들의 삶을 크게 위협하고 있었다. 경세제민의 뜻을 가진 지식인이라면 누구라도 개혁에 동 참해야 했다. 홍길주는 누가 이러한 뜻을 이루어 주겠는가?[孰遂念]라면서도, 세상을 떠도는 이재민들과 병들어도 의사에게 치료받을 수 없는 인민들을 위해, 복지기구인 삼재원을 만들고 자선의국인 용수원을 구상했다. 그의 비영리 기구 들은 자신의 가족과 친·인척만을 위한 의장(義莊)이나 병원이 아니라 공동체의 안녕을 목표로 했다. 그러한 점에서 공공의 제도가 확실했다. 한편, 조선후기에 유교 윤리의 사회 침투가 강화되고 더욱 많은 소민들이 유학(幼學)을 자처했다. 많은 유생들이 치국의 꿈을 키웠지만 관료 진출의 기회는 공평하지 않았다. 불우 한 지식인들은 생계를 도모하고자 권귀(權貴)들과 경화 가문의 비서[책객이나 겸 인]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가문을 돌보았지만, 근본적인 항산의 방도가 되지 못했다. 홍길주는 용수원(用壽院)에 경세제민의 뜻을 가진 지식인들을 초빙하여 함께 의서를 편찬하고 환자를 치료하는 공공의 자선(慈善)을 구상했다. 누구보다 유능했지만 기회를 잡지 못해 의술을 포기하거나 의서를 저술했지만 전수되지 못했던 유의(儒醫)들의 경험과 지식을 보존하고자 했다. 국가가 하지 못하면 개 인이 나서야 했다. 홍길주는 자신의 기획을 상상에 불과하다고 말했지만 누구보다 그 실현을 희망했다. 이들 점증하는 불우한 지식인은 19세기 위기의 주요 징 후인 동시에 당대 위기 극복의 주요 주체들이었다.
ISSN
1225-746x
URI
https://hdl.handle.net/10371/203665
DOI
https://doi.org/10.17647/jss.2022.08.8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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