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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길준의 문체 실험과 언문일치의 의미 : Yu Giljuns Experiment of Style and His Understanding of the Unity of Speech and 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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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황재문

Issue Date
2021-04
Publisher
춘원연구학회
Citation
Chunwon Research journal No.20, pp.53-80
Abstract
유길준(1856~1914)은 1889년에 완성하여 1895년에 간행한 『서유견문』에서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는 새로운 문체를 사용하였는데, 그것은 한문 구문을 해체하면서 한국어에 가까운 문장을 추구하는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유길준은 격식에 맞는 한문 문장을 기대한 독자로부터 비난받을 것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보다 많은 사람에게 보다 정확한 뜻을 전달하기 위해 국한혼용의 문체를 채택한 것이었다. 다만 그 문체는 과도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는데, 유길준 스스로도 그러한 한계를 인식한 것으로 짐작된다. 유길준은 1896년 이후 12년 동안 일본 망명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 기간 동안 한국어 문법에 대한 연구를 담은 책을 쓰면서 문체의 변화를 도모하였다. 여러 차례의 개고(改稿)를 거쳐 간행한 『대한문전』(1909), 한자의 훈독(訓讀) 표기를 시도한 『노동야학독본』(1908)과 훈독 표기를 제거한 개정본인 『노동야학』(1909)에서 그러한 변화의 방향성을 찾아볼 수 있다. 『대한문전』에서는 언문일치라는 목표를 제시했는데, 언문일치의 역사에 대한 그의 인식을 고려할 때 그것은 한자가 국문의 보조물이자 부속품이 된 상황을 반영한 국한혼용문으로 추정된다. 다만 선행하는 필사본인 『조선문전』과 활판본인 『대한문전』을 비교해 보면, 그의 언문일치는 글의 종류와 목적, 독자에 따른 점진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노동야학독본』(1908)의 훈독 표기는 언문일치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 제시된 바 있었는데, 표기방식을 고친 『노동야학』(1909)을 살펴보면 훈독 표기가 완전한 한글 표기로의 전환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교과서라는 특수성이 있음을 감안하면, 여기서 기대한 언문일치는 한국어 어법을 갖춘 국한혼용문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ISSN
2636-1205
URI
https://hdl.handle.net/10371/203697
DOI
https://doi.org/10.31809/crj.2021.4.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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