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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사회주의자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이청원의 삶과 실천 : The Socialist of the Empire :The Life and Practice of Marxist Historian Lee Cheong-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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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홍종욱

Issue Date
2021
Publisher
상허학회
Citation
상허학보, Vol.63, pp.119-178
Abstract
함경남도 풍산에서 자란 이청원은 1930년에 일본 도쿄로 건너가 공산주의를 접하고 노동운동에 가담했다. 재일조선인 사회운동은 코민테른의 일국일당 원칙에 의해 일본인 조직과 통합된 상태였다. 이청원은 전협, 공청 등에서 간부로 활동하며 수차례 검거되었다.
1935년에는 유물론연구회에 참가해 일련의 한국사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유물론연구회는 도사카 준 등 유수한 마르크스주의 학자가 결집한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화 운동의 핵심 단체였다. 당초 이청원의 연구는 백남운의 역사인식을 지지하는 등 한국사의 내재적 발전에 주목했다. 그러나 1936년 『조선사회사독본』에서는 아시아적 특수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전환했다. 유물론연구회에서 교류한 일본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의 연구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이청원은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낮게 평가했다. 이는 민족통일전선에 대한 소극적 태도로 이어졌다. 1938년 이후 다시 비합법 활동에 가담했다가 투옥되었다. 전향서에서는 통제경제론, 민족협화론 등 한국이 처한 고유한 조건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중일전쟁기 언론에 비친 한국인 전향 좌파의 시대 인식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해방 이후 이청원은 북한 역사학을 선도한다. 그러나 1955년 8월 전원회의 사건 이후 종파주의, 교조주의로 비판받기 시작한다. 민족부르주아지와 연대를 경시한다는 비판이 핵심이었다. 식민지기 민족통일전선에 대한 소극적 태도가 해방 후의 역사연구에도 그림자를 드리운 셈이다. 더 본질적으로는 민족주의에 입각한 단선적 발전단계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은 탓이었다. 동아시아 제국 질서의 해체와 국민국가 체제의 확립이 뚜렷해지는 가운데, 제국의 사회주의자 이청원의 역사 인식은 설 자리를 잃었다.
ISSN
2005-7261
URI
https://hdl.handle.net/10371/203710
DOI
https://doi.org/10.22936/sh.63..20211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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