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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부의 근대-남북한의 식민지 반봉건론을 다시 생각한다- : Modern in Periphery -Rethinking the Theory of Colonial Semi-feudalism in North and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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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홍종욱

Issue Date
2014-11
Publisher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Citation
사이間SAI No.17, pp.181-219
Abstract
식민지=근대라는 식민지근대론의 원점으로 돌아가 식민지를 서구와 아시아라는 이질적인 시간과 공간이 겹쳐지는 장소로서 파악한다면, 1980년대 한국의 지식계를 강타했던 식민지반봉건론의 문제의식이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두 이론은 근대 혹은 자본주의의 비대칭성, 불균등성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1930년대 중반 일본에서 벌어진 중국통일화논쟁의 핵심은 식민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였다. 야나이하라 다다오는 근대화론 혹은 식민지탈화론의 입장이었고, 오카미 스에히로의 논의는 식민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정체론에 가까웠다. 나카니시 쓰토무는 양자를 비판하면서 반식민지의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서의 제국주의의 이중성과 그에 따른 민중의 저항에 주목하였다. 식민지조선의 인정식은 조선을 반봉건제 사회로 보면서 그 정체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오카미와 비슷한 입장이었다. 이에 반해 박문규나 박문병은 식민지라는 규정성을 중시하면서, 제국주의에 의한 봉건제의 유지·강화와 아울러 농촌 사회 분화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한편 전향 이후 인정식은 조선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인정하면서 조선이 식민지라는 사실을 부인하게 된다.
북한의 근대사 시대구분 논쟁은 1962년 식민지반봉건=근대사라는 형태로 총화되었는데 이는 사회구성설과 계급투쟁설의 결합으로 평가할 수 있다. 1980년대 주체사관이 본격화됨에 따라 계급투쟁설이 전면적으로 채택되어 근현대의 분기점은 1945년 해방에서 1919년 3.1운동으로 변경된다. 주체가 강조되면서 역설적으로 반식민주의가 형해화된 셈이다. 한편 안병직은 자본주의 맹아론을 포함하여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1980년대 안병직의 식민지반봉건론에서는 근대화론이나 사적 유물론의 공식에서 벗어나 식민지 경험을 설명하고자 하는 고민이 엿보인다. 박현채나 가지무라 히데키는 안병직과 달리 한국의 자본주의화를 인정한 위에 그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1989년 안병직은 한국의 NICs적 성장에 주목하여 탈종속의 전망 아래 한국 자본주의의 성공적 발전을 평가하는 글을 발표한다. 이와 같은 방향 전환은 그가 식민성을 해명하는 문제를 포기한 것을 의미한다. 중국통일화논쟁에 비유하자면 오카미에서 야나이하라로의 방향 전환에 해당하고, 식민지기 인정식의 전향과도 흡사하다. 안병직과 가지무라 혹은 박현채의 차이는 식민주의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민중의 저항을 인식했는가에 있었다.
ISSN
1975-7743
URI
https://hdl.handle.net/10371/203869
DOI
https://doi.org/10.30760/inakos.2014..17.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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