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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즉위~갑오개혁 초기 개성부(開城府) 위상의 변동과 세출입(歲出入)의 추이 : A Study on the Standing Changes and Trends of Annuual Expenditure and Revenue in Gaeseong-bu, 1863~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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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태웅

Issue Date
2019-12
Publisher
역사학연구소
Citation
역사연구 No.37, pp.9-38
Abstract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부는 조선 초기에 유수부로 설정되면서 과거의 규모와 명성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군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그것은 무엇보다 수도 한양을 방어하는 군사 요충지로서의 기능이 중시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개성부가 사행 길목에서 중국 칙사를 대접하는 중요 관아여서 그 중요성이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개성부의 이러한 군사적·행정적 위상은 병인양요와 곧이어 일어난 신미양요를 계기로 재차 부각되면서 개성부는 정부의 각종 지원을 받기에 이르렀다. 나아가 고종이 1872년 조선왕조 개창 8주갑을 맞아 개성부에 행행(行幸)하여 조선 왕실의 정통성을 강화함은 물론 개성부 주민을 위무하고 그들에 대한 대우를 개선함으로써 개성부의 정치적 위상이 군사적 위상에 못지않게 높아졌다.
이후 청일전쟁과 갑오개혁을 계기로 사신 내왕이 중지되고 군사적 위상이 낮아지면서 개성부는 재정적·군사적 부담을 덜었다. 이제 개성은 중세 군사도시로서의 성격을 탈각하고 근대 행정도시로 새롭게 전환해야 했다.
ISSN
1229-1714
URI
https://hdl.handle.net/10371/206108
DOI
https://doi.org/10.31552/jh.2019.12.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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