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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인생관(현학)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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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허남진-
dc.contributor.author박성규-
dc.date.accessioned2010-01-11T06:43:45Z-
dc.date.available2010-01-11T06:43:45Z-
dc.date.issued2002-
dc.identifier.citation인문논총, Vol.47, pp. 177-207-
dc.identifier.issn1598-3021-
dc.identifier.urihttps://hdl.handle.net/10371/29346-
dc.description.abstract중국사상계에 1923년 발생한 과학과 인생관(혹은 玄學) 논쟁(料玄論戰)은 중국현대사상사에 있어서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그 논쟁은, 근대 중국이 서양과의 접촉에서 받은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추스려 주체적으로 사상적 방향을 정립하려는 최초의 역동적 자기 성찰 작업이었고, 실제로 현대신유학의 탄생을 예고한 역사적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19세기 중엽이래 주권 상실의 굴욕적인 사건들을 연속해서 맞이했다. 아편의 확산 폐해를 고심하던 청 왕조는, 임칙서(林則徐)를 광저우에 파견하여 아편의 국내 반입을 금했다. 그러나 임칙서가 영국인들이 반입하려는 아편을 소각하자 영국은 아편전쟁을 일으켰다. 이후 중국은 영불 연합군의 북경입성, 남경조약(1842), 홍콩 할양, 광동•상해 등 5개 항구의 개항, 북경조약(1860), 러시아 프랑스 영국 일본 등과의 불평등 조약 등등을 감내해야 했다. 이처럼 중국 역사상 일찍이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이어졌던 것이다. 결국 조세권, 채광권, 관세권, 치외법권, 체신권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주권을 상실하자 국가의 기강은 급속히 무너져내렸고 오랜 문화적 자부심은 뿌리째 흔들렸다. 이제 중국은 생존을 위해 서양(오랑캐)의 학문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dc.language.isoko-
dc.publisher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인문학연구원-
dc.title과학과 인생관(현학) 논쟁-
dc.typeSNU Journal-
dc.citation.journaltitle인문논총(Journal of humanities)-
dc.citation.endpage207-
dc.citation.pages177-207-
dc.citation.startpage177-
dc.citation.volume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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