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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부시기(1906-1910)의 삼림정책에 관한 고찰 - 완도封山의 불하미수사건을 중심으로
A Revisit to the Forest Policy of Korea during the Period of 1906-1910 under the Spheres of Influence of Japan - With a Special Reference to an Attempted Incident of Wando Bong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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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배재수; 윤여창
Issue Date
1995
Publisher
한국임학회 = Korean Forest Society
Citation
한국임학회지 84(1) : 42-62. 1995
Jour. Korean For. Soc. 84(1) : 42-62. 1995
Keywords
Forest policySpheres of Japanese influenceForest exploitationWando Bongsan
Abstract
이 논문의 목적은 완도봉산의 불하미수사건을 중심으로 통감부 임업정책의 성격을 규명하려는데 있다. 일제에 의한 통감부 설치는 세계사적으로 특수한 형태라기 보다는 당시 제국주의에 의해 널리 파급된 세력권(Sphers of Influence)과 보호령(Protectorate)의 체현과정이라는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 일정기간동안 약소국을 자국의 세력권하에 두고 외교권의 장악 및 내정을 간섭하여 이후 식민지로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통치기구로서 일제에 의해 설치된 통감부를 정의할 수 있다.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통감부가 임업정책의 목표로 삼았던 것은 크게 두가지로 볼 수 있다. 그 하나가 조선의 식민지화를 전제로 하여 대규모의 국유림 창출을 통한 산림수탈 및 조세수입의 안정적인 확보를 도모하고자 한 것이다. 통감부 영림창이 당시의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국가 산림경영기구(=수탈기구)로서 역할을 담당하였고 삼림법 부칙 제19조를 통하여 강점 이후 막대한 국유림 창출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다른 하나는 일본자본의 조선 임업부분으로의 침투요구를 반영한 법적 조항의 제정이였다. 이를 가능케 한 것으로 삼림법 제3조 부분림 조항을 들 수 있다. 특히 후자의 요구, 일본인 자본이 조선 산림으로 침투하고자 한 최초의 사건으로 완도사건을 규정할 수 있다. 완도사건은 통감부라는 일제의 대리 통치기구와 친일관료, 일본인 자본가가 결탁하여 조선시대 이래로 금양되어 온 황장봉산을 일본인 자본가에게 불하하려는 제국주의적 의도로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증거는 통감부의 농상공부 차관 岡喜七郞, 산림국 技士 道家充之 및 일본인 자본가인 江藤恒策의 최동에서 확인된다. 완도사건이 전해지자 민족일간지인 皇城新聞과 大韓每日申報는 즉각적으로 통감부의 초법적인 행태와 친일매판 관료의 매국적인 의도를 강도높게 비판하였고 결국 1908년 12월 각의를 통해 불하불가판정이 내려졌다. 이는 통감부가 불하불가 판정을 내리기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당시 민족일간지의 선도적인 노력과 국민적 반일감정으로 인해 통감부로 하여금 불하불가 판정을 강제해 낸 사건으로, 통감부 시기 [反日運動]으로 다시 쓰여져야 할 것이다.
In the paper. the forest policy of Korea during the period of 1906 to 1910 under the spheres of Japanese influence was revisted by considering the incident of attempting sales of the old Crown forest reserve in Wando to a Japanese business man with a failure and the national forest policies of the Residence General in Korea of the Japanese Imperial. The factors, both the internal and external, behind the scene of the incident are considered for the explanation for the development of the incident with the forest reserve in Wando. The forest policy during the period considered involves the exploitation of virgin forests in the northern provinces near the rivers bordered with China and Russia, the introduction of forest law, which is the first modern regulation enacted with the heavy influence of the Japanese interest in the colonization of Korea. The intentions of the Japanese Colonial Power for the exploitation of forest resources in Korea were interpreted by investigating the report on the situation of forest ownership in Korea prepared by Japanese forest officers who surveyed the Korean forest areas by sampling just before the beginning of colonization.
ISSN
0445-4650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5040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Agriculture and Life Sciences (농업생명과학대학)Dept. of Forest Sciences (산림과학부)Journal Papers (저널논문_산림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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