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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초유의 창안인 高麗鑄字印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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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千惠鳳-
dc.date.accessioned2010-04-29T04:06:25Z-
dc.date.available2010-04-29T04:06:25Z-
dc.date.issued1984-12-
dc.identifier.citation奎章閣, Vol.8, pp. 63-75-
dc.identifier.issn1975-6283-
dc.identifier.urihttps://hdl.handle.net/10371/63467-
dc.description.abstract木板印刷는 나무를 베어 적당한 크기와 부피의 판목으로 켜서 물에 담그거나 짜서 汁液을 빼고 충분히 건조시켜 썩거나 뒤틀리거나 빠개지지 않게 하는 동시에 결을 삭여 판각하기 쉽게 해서 대패질한 다음, 刊行코자 하는 책을 깨끗이 써서 판목위에 뒤집어 붙이고 한 자 한 자를 정성껏 새겨내기 때문에 費用과 時間이 무척 많이 들면서도 오직 한 문헌의 印刷로 국한되는 것이 큰 폐단이었다. 그리하여 한 벌의 活字를 만들어 놓고 잘 간직하면서 필요한 책을 입수하는대로 수시 組版하여 손쉽게 찍어 유통시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便利한 방법을 궁리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活字印刷의 利點을 실현시키려는 最初의 試圖는 北宋의 慶曆年間(1041~1048)에 畢昇이란 평민이 만든 膠泥活字에서 비롯하였다. 그러나 그 活字는 찰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耐久性이 약하여 자주 망가지고 또 組版하기 까다로와 實用化에 失敗하였으며, 그것을 金屬活字의 印刷에서 처음으로 成功시킨 것이 바로 高麗朝의 우리 祖上들이었다. 우리나라는 영토가 좁고 인구가 적어 독서 또는 학문하는 이들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木板印刷와 같이 번거롭고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것보다는 한 번 活字를 만들어 잘 간직하면서 손쉽게 경제적으로 필요한 책을 수시 찍어 내어 이용할 수 있는 鑄字印빼가 정녕 안성마춤이었다. 高麗때 조상들이 온갖 슬기를 짜내어 처음으로 고안해 내는 데 성공한 까닭도 바로 여기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dc.language.isoko-
dc.publisher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dc.title세계 초유의 창안인 高麗鑄字印刷-
dc.typeSNU Journal-
dc.citation.journaltitle奎章閣-
dc.citation.endpage75-
dc.citation.pages63-75-
dc.citation.startpage63-
dc.citation.volum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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