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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침략과 「황실재정정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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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李相燦
Issue Date
1992-12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奎章閣, Vol.15, pp. 125-153
Abstract
고종은 1907년 7월 18일 「대리」詔勅을 내려 ‘황태자에게 軍國大事률 代理’시켰다. 고종이 양위와 관련된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에도 8월 3일부터 年號를 ‘隆熙’로 쓰고, 광무 11년의 후반기를 융회원년으로 불렀으며 8월 27일 순종의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父王이 「대리」조칙만 내리고, 그 父王이 살아있음에도 연호를 바꾸고 원년을 쓰며 즉위식을 하는 것은 유교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못할 일이었다. 이러한 일은 伊藤傳文과 고종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시기 고종이 밀릴 데까지 다 밀려 있어서 실권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그를 완전히 퇴위시키는 것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일제로서는 그들의 지배정책에 순순히 응하지 않는 고종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1907년 7월 이후 몇달간은 고종을 밀어내려 하는 일제에 대항해서 고종이 마지막 버티기를 하던 시기였고 고종아 일제와 힘에 완전히 밀려나는 것은 1907년 11월 중순쯤이 아닌가 생각된다.
ISSN
1975-6283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63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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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규장각한국학연구원)규장각규장각 (奎章閣) vol.15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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