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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8세기 平安道 儒生ㆍ武士層 성장의 사회경제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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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吳洙彰

Issue Date
1995-12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奎章閣, Vol.18, pp. 1-25
Abstract
17. 18세기에 평안도는 괄목할 만한 사회 변화를 바탕으로 儒生과 武士들이 중앙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도 점점 늘어났다. 서북, 곧 평안도와 함경도의 주민들은 원래 官人으로 진출하는 데 심한 차별을 받고 있었다. 문과 급제자들에계 承文院 分館을 막고 무과 급제자들을 宣傳官薦에 허락하지 않아 淸要職을 거쳐 고위 관직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처음부터 막았던 것이 차별의 대표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나 17게기 인조대 이후로 國王과 일부 官人들이 西北人을 등용하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였다. 숙종대까지의 西北人 登用은 미시적으로 볼 때 국왕과 소수파의 정치 집단이 다수파 官人들의 정치 주도를 견제하려는 입장에서 추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정책 역시 국가 방위 기지로서의 서북의 중요성이 커지고 현지의 사회 역량이 성장하였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17세기 후반에 들어가서는 인구가 많은 데 더하여 경제가 크게 성장하고 있던 평안도의 평안도 문과 급제자가 앞 시기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은 지역 사회의 성장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현상이었다. 그리하여 18세기 英祖·正組의 탕평책이 시행되면서는 서북 사회의 지역 특성을 이해하고 북돋우는 방향으로 지역민 수용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때에는 평안도와 함경도 중에서 역동적인 사회변화를 보이고 있던 평안도에 정책이 집중되었으며, 중심 수용 대상도 人才 일반이라기보다는 그 지역의 새로운 활력을 담고 있던 武士層으로 설정되었다.
ISSN
1975-6283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6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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