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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祖의 華城 경영과 문헌 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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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김문식-
dc.date.accessioned2010-05-04T01:14:10Z-
dc.date.available2010-05-04T01:14:10Z-
dc.date.issued2000-12-
dc.identifier.citation奎章閣, Vol.23, pp. 89-111-
dc.identifier.issn1975-6283-
dc.identifier.urihttps://hdl.handle.net/10371/63742-
dc.description.abstract조선의 22대 국왕 정조는 조선의 문예부흥기라 불리는 18세기 후반의 정계와 학계를 주도했던 君師,즉 학자군주였다.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둘째아들로 태어난 정조는 11세에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이후 왕세손이자 동궁으로 있던 14년 동안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가운데 학문 연마에 몰두했다. 이에 따라 1776년 25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정조의 학문은 이미 당대의 학자들을 이끌만한 수준이었고, 이후 24년 3개월간 국왕으로 있으면서 조선을 찬란한 문화국가로 만들었다.

학자군주로서 정조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정조대에 편찬된 방대한 문헌이다. 실제로 정조대에 편찬된 문헌의 총목록이라 할 수 있는 『群書標記 』를 보면 정조대에는 150여 종, 4천 권에 이르는 문헌이 편찬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는 정조가 직접 편찬을 주관한 御定書와 규장각 각신 및 초계문신을 비롯한 국왕 측근의 신료들이 편찬을 분담한 命撰書만을 말한 것이며, 중앙과 지방의 각급 기관이나 민간에서 개인들이 편찬한 서적을 고려한다면 정조대에는 훨씬 많은 문헌들이 편찬 간행되었다. 정조는 각종 정책을 입안하기에 앞서 반드시 학문 연구를 거치도록 했고, 전란으로 와해있었던 국가의 문물제도를 정비하면서 그 결과를 문헌으로 정리하였기 때문에 이처럼 많은 문헌들이 편찬되었던 것이다. 정조대의 문헌은 주로 규장각의 출판 기능을 통해 인쇄되었다. 정조는 서적의 인쇄를 위해 여러 종류의 활자를 주조하여 규장각에 비치해 두고, 책의 내용에 따라 활자를 골라 인쇄했다. 또한 정조는 책의 속표지에 디자인 개념을 도입하고 책의 내용에 부합하는 의미를 가진 도장을 찍어 책 자체를 하나의 예술품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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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language.isoko-
dc.publisher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dc.title正祖의 華城 경영과 문헌 배포-
dc.typeSNU Journal-
dc.citation.journaltitle奎章閣-
dc.citation.endpage111-
dc.citation.pages89-111-
dc.citation.startpage89-
dc.citation.volume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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