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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도서의 유래와 1866년 프랑스 해군에 의한 방화 약탈 직전의 소장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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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태진

Issue Date
2002-12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奎章閣, Vol.25, pp. 49-63
Abstract
규장각은 조선왕조 22대 군주 정조가 즉위하던 해(1776)에 창설한 국왕 직속의 도서관 겸 학술연구기관이다. 정조는 6년 뒤 1782년 2월에 서울에서 60킬로미터 떨어진 강화도에 규장각의 외각을 짓고, 이 기관의 수장품 가운데 영구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보관하게하였다. 이 외각이 곧 외규장각이다. 강화도는 해안의 갯펄이 넓고 깊게 펼쳐져 당시까지도 국방상 요해지로 간주되었으며, 약 100여 년 전부터 국왕이 유사시에 피난할 수 잇는 행궁을 정비하였다. 외규장각은 그 행궁 건물 가운데 세워졌다.

그로부터 74년 뒤인 1866년 10월 16일에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해군 극동함대의 병력이 이 섬에 상륙하였다. 천주교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에 대한 조선정부와 제재와 박해에 대한 항의와 보복을 목적으로 한 군사행동이었다. 로즈 제독은 이 섬에 체류하면서 조선군과 두 차례 전투를 벌였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제독은 섬 동편 해협 건너 산성(문수산성)에서 조선군이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10월 26일 그곳으로 정찰대를 보냈지만, 조선군의 공격을 받아 전사자 3명, 부상자 2명을 냈다. 그리고 11월에 접어들어 섬 남쪽한 지점(전등사)에 조선군이 해협을 몰래 건너와 집결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10일에 180명의 보병 정찰대를 보냈다. 그러나 이때도 조선군의 맹렬한 집중사격을 받아 29명의 부상자를 냈다. 제독은 형세가 불리한 것을 감지하고 이튿날 철수를 단행했다.

11월 11일 철수를 단행한 로즈제독군은 다음과 같은 물품들을 전리품으로 챙겼다. 은궤 19상자(무게 887Kg 550g. 평가액 1 97 .2 31 프랑 3 6상땀 ) ,외규장각 비치품 359점 (도서 340점, 지도 1, 천문도 1, 족자 7, 대릭석판 곧 옥책 6, 갑옷 투구 3, 가면 1) 등이었다.
ISSN
1975-6283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63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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