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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égritude» et après.... : <네그리튀드>와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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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TSUNEKAWA, Kunio

Issue Date
2010
Publisher
서울대학교 불어문화권연구소
Keywords
négritudeHaïtià deux vitessesLéopold Sédar SenghorAimé Césairediaspora네그리튀드이원구조셍고르세제르아이티디아스포라
Abstract
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명의 창시자인 에메 세제르 Aimé Césaire, 레오폴 세다르 셍고르 Léopold Sédar Senghor, 레옹 공트랑 다마스 Léon‐Gontran Damas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
하다. 세제르와 다마스는 마르티니크에서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으며 이후 파리에서도 우정을 유지했고, 그곳에서 셍고르를 만나 세 사람의 관계가 성립되었다. 특히 『에뛰디앙 누아르 Létudiant noir』지를 통해 네그리튀드 운동이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세 인물 가운데, 다마스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데, 그 이유는 그가 90세 이상을
살았던 두 사람에 비해 66세의 나이에 일찍 사망한 때문이며, 미국에서 교수로 있으며 생을 마친 이력에서 찾을 수 있다. 다마스의 네그리튀드에 대한 관점은 셍고르보다는 세제르에 가까워 상당히 급진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일례로 그의 대표작품 『Pigments』이나 『Retour de Guyane 』는 그 내용이 국가의 존립에 영향을 줄 만큼 과격하다 하여 프랑스에서 금서가 되기도 했다. 다음으로 네그리튀드 운동의 큰 두 가지 경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셍고르와 세제르의 관점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셍고르는 아프리카 문화의 본질이 지니는 위대성을 찾아내고자하는 낙관주의자로, 세제르는 그것보다는 식민지 상황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투쟁을 주장하는 비관주의자로 간주된 다. 이러한 경향은 동화 assimilation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네그리튀드 운동 이후인 지금, 네그리튀드는 어떤 상태에 있을까에 대해 질문해 볼 수 있는데, 인종차별주의자나 흑인에 대한 불평등한 상황이 지금까지도 존재하므로 네그리튀드 운동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결론을 대신해서 아이티의 상황을 예로 들고자 한다. 최초의 독립국으로서 네그리튀드의 성지로 여겨지고 있는 아이티는 독립 이후 독재와 가난, 그리고 최근에는 큰 지진사태로 국가적 위기상태에 있다. 아이티가 비록 궁핍하고 정치적으로도 혼란한 상태에 있지만 아직도 네그리튀드의 정신이 계승되고 있고 높은 문화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네그리튀의 상징이기도 한 아이티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재건되기를 염원한다.
ISSN
1975-3284
Language
French
URI
https://hdl.handle.net/10371/74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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