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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하르트 리히터의 회화 - 미술사의 "편견들"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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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김정희-
dc.date.accessioned2012-07-06T05:19:34Z-
dc.date.available2012-07-06T05:19:34Z-
dc.date.issued2004-
dc.identifier.citation造形 FORM, Vol.27, pp. 67-73-
dc.identifier.urihttps://hdl.handle.net/10371/78634-
dc.description이 워너고는 2003년 5월 갤러리 현대에서 있었던 독일 3인 작가전 중 리히터 전시를 위한 도록에 인쇄되었던 글을 수정, 보완한 것으로 조형연구소 편집부의 요청에 따라 재게재한다.-
dc.description.abstract게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er)의 대규모 회고전이 2002년 초에 뉴욕의 MoMA에서 시작되어 미국에서 1년이 넘게 계속되었다. 그처럼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 왔던 동시대 화가 게오르그 바첼리츠(Georg Baselitz)가 일찍이 1960년대에 "국제적 양식에게 굴복했다"면서 "조국(Veterland)을 배반한" 화가로 불렀던 리히터를 미국 언론은 "불가사의" 또는 "유럽의 가장 위대한 현대화가"라고 칭송하였다.
리히터의 회화가 "불가사의"라고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회화의 다채로움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맹포르멜 회화, "자본주의적 사실주의", 사진을 보고 그린 윤곽선이 흐린 회화, 재현인지 추상인지를 구별하기 어려운 회화, 낭만주의적 정물화와 풍경화, 격정적인 추상화, 색 패턴 그림, 자신의 작품을 부분별로 나누어 찍은 흑백사진, 사진 위에 그린 그림, 알루미늄판 위에 그린 '회화', 국기를 닮은 색 띠 그림 등, 그는 매우 다양한 양식들을 보여주었다. 그는 양식을 "폭력행위"라고 거부하면서 우리가 미술 내의 여러 특징들을 수직적으로 수평적으로 구별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범주들을 무력하게 만들고, 소위 대립적이라고 이해되었던 요소들의 차이를 무시함으로써 이러한 "불가사이"에 도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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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language.isoko-
dc.publisher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형연구소-
dc.title게하르트 리히터의 회화 - 미술사의 "편견들"을 넘어-
dc.typeSNU Journal-
dc.citation.journaltitle造形 FORM-
dc.citation.endpage73-
dc.citation.pages67-73-
dc.citation.startpage67-
dc.citation.volume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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