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材料技法을 中心으로 본 한국美術史에서 차지한 高句麗 壁畵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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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종상
Issue Date
2005
Publisher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형연구소
Citation
造形 FORM, Vol.28, pp. 87-95
Abstract
인류가 지상에 서식(樓惠)하면서 생존에 필요한 도구
제작 이외에 정신적인 위안(愚安)이나 주술적(呪術的)인 신앙을 목적으로 하여 남져진 그림 중에 가장 수명이 길고 또 가장 기본적인 재료와 기법을 구사했던 회화(續畵) 작폼(作品)이 벽화(壁畵)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현대 회화의 재료와 기법이 가늠 할 수 없을 정도로 시대적 미감에 따라 적응하고 변화하면
서 발전을 거듭해왔으며 또 앞으로도 그렇게 변화해 갈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변모를 거듭해온 회화의 양식(樣式)과 재료(材料) 기법(技法)도 알고 보면 고대 벽화의 재료와 기법에서 기원(起源) 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 나라 그 시대의 미술 양식이나 재료 기법을 깊이 있게 연구하려면 그 나라의 고대 벽화를 연구하지 않고서는 형식과 내용을 모두 갖추어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 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고구려 벽화가 다수 남아 있음으로 해서 후대의 미술사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는 데 더 없이 좋은 자료가 된다. 다만 안타까운 일은 우리의 미술기록이 지나치게 양식사(樣式史)에 치우쳐 있어 외형적으로 자칫 단절(斷絶)의 역사를 배워야 하는 아쉬움을 경험 할 때가 많다.
2003년, 지난해는 특히 고구려의 국내성(國內城) 천도
(遷都) 2000년을 맞는 해였다. 국내성에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우리 미술사 속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무용충, 각저총의 벽화는 물론 광개토대왕비를 비롯한 만 여기의 고구려 무덤이 산재(散在)해 있는 우리 고대문화의 보고지(寶庫地)이다.
우리는 반세기가 넘게 남북의 이데올로기 분쟁에 휘말
리면서 분단(分斷)의 장벽(障壁)으로 인해 그 동안 고구려 벽화를 우리 미술사 속에서 방치(放置)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미술사가 대체적으로 양식사(樣式史)에 치우쳐 있어 암각화(岩刻畵)로부터 고구려벽화(高句麗壁畵)로 이어져 고려불화(高麗佛畵)와 조선회화(朝鮮繪畵), 그리고 현대미술(現代美術)로 면면이 이어져 오고 있는 회화의 재료사(材料史)나 기법사(技法史)의 연구가 등한(等閒) 했었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한국의 모든 회회기법(繪畵技法)은 고구려 벽화로 귀착(歸着)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돈황벽화를 모르고 중국의 미술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고구려 벽화의 재료 기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고려불화(高麗佛畵)와 조선(朝鮮)의 채색화(彩色畵)는 물론 초상(肖像) 인물화(人物畵)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구려 벽화를 거치지 않고는 미래의 회화를 운위 할 수 없다. 그만큼 고구려 벽화의 재료와 기법 안에는 회화의 모든 원리와 미래의 조형적 예지가 틀어있기 때문이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78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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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Fine Arts (미술대학)Visual Arts Institute (조형연구소)Form (조형)Form (조형) vol.2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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