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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한인의 사회와 문화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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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게르만

Issue Date
1995
Publisher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Citation
비교문화연구, Vol.2, pp. 201-251
Abstract
구소련의 학술 및 사회정치문헌에서는 자청 또는 통용되는 명칭으로서 구소련 한인 (советские-хорейцы)이란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 명칭 속에는 러시아에 살고 있는 한인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및 생활의 엄청난 변화가 반영되고 있다. 민속학자 P. m. ДЖарыгалсинова의 결론은 상당히 확실한 것이다. 즉 재소 한인들의 명칭(ЗТНОНИМ)은 새로운 인종공동체의 형성과 다방면에 걸친 복잡한 의식과정의 결과를 반영하고 있다 (ДЖарыгалсинова, 1980: 44). 구소련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고대 명칭이 -고려사람 그리고 조선사람(즉 고려국가의 사람과 조선국의 사람이란 뜻이다)-남아 있다.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한인 이주에 대한 첫 소식은 19세기 60년대 초 알려진다. 1863년 한인 20가구가 노브고로드 초소 소대장 육군중위에게 띠진헤 강 계곡에 정착하도록 허락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래서 1865년 라자노프 마을에서 첫 한인 정착촌이 생겨났다 (Рязанов, 1905: 206-222)

처음 10년간 재정 (載定) 행정부는 한인 이주자들에게 우호적으로 대했다. 코르사코프, 두호프스키, 그로데코프 총독들은 지역개발을 위해 한인들을 활용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1905년부터 새로 부임해 온 아무르 지역의 φ. Унгербергер 총독은 러시아 서부지역으로부터의 이주운동을 독려하면서 한인 이주민들의 유입을 반대하기 시작했다. 한인 문제는 1911년 아무르 탐험조사대상 중 하나였다. 이 조사의 결론은 앞으로 한인들의 지역 입주를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곤다츠 지역 총독이 실시하게 된 정책의 출발점이 되었다 (Песоцхий

, 1913: 6). 하지만 행정부의 교체, 한인들의 이주와 정착에 대한 다양한 태도로 그들의 법적 • 사회경제적 그리고 민족문화적 불평등은 변하지 않은 상태로 남겨졌다.
ISSN
1226-0568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79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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