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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den und Größe des koreanischen Konfuzianisten Jeong Dasan : 실학자 정다산의 고뇌와 위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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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Ahn, Sam-Huan

Issue Date
2008
Publisher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독일학연구소
Citation
독일어문화권연구, Vol.17, pp. 209-223
Keywords
정다산상제(上帝)격인(格人)천명(天命)실학(實學)금장태(琴章泰)Jeong DasanHimmelskaiserErreichter MenschHimmelsbefehlPraktische LehreGEUM Jang-Tae
Abstract
병자호란 때에 인조가 청나라 황제 앞에 무릎을 꿇은 이래, 17세기 조선의 선비들, 특히 송시열을 비롯한 노론 일파는 淸을 야만의 나라로 간주하고 조선이야 말로 멸망한 문화대국 明을 대신할 수 있는 로 인식하고 있었다. 주희를 공맹의 절대적 적통으로 섬기고 그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자 했던 송시열 등의 주자학적 도덕률은 18세기에 들어오자 차츰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 경직화되면서, 성호 이익으로부터 연암 박지원에 이르는 일련의 진보적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는 새로운 지식체계와 그들의 실학을 이라며 억압, 탄압하는 기제가 되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 하에 다산 정약용은 1786년 경기 마재(馬岘)에서 양반의 아들로 태어났다.

다산도 처음에는 독일의 동시대인 괴테와도 같이 행운아인 것처럼 보였다.21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금방 정조의 총애를 얻고 經筵場에서 공자의 『中庸』을 해석하는 과제를 맡기도 했다. 이 때 다산의 천재성이 처음으로 드러나는데, 琴章泰교수에 의하면, 다산이 공자의 하늘(天)을 과 으로 나누어 생각했다는 것이다. 즉, 다산은 공자의 이란 개념을, 上帝가 있는 장소로서의 하늘과, 모든 신의 首長으로서 다른 신들을 거느리는 上帝 자체로 구분해서 생각했다는 것인데, 이러한 다산의 생각은 地神의 작용을 중시하여 천신과 대비시켜온 동양의 전통적 음양 사상을 일단 수정하여, 을 유일신 에 근접시킨 것으로서, 『書經』에 나오는이 그 순수한 덕행과 專一한 정신을 통해 을 받을 수 있다는 다산의 그 다음 생각을 유발시킨다.

또한, 이것은 과 사이에 를 설정한 가톨릭 사상을 연상시키며, 과 사이에 항상 의 道를 상정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에서의 다산의 근본 생각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1780년대에 다산이 李檗 등에게서 가톨릭의 가르침을 받았던 영향이 그의 사상의 큰 기둥들 중의 하나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ISSN
1229-7135
Language
German
URI
https://hdl.handle.net/10371/87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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