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

箜葔引異攷

DC Field Value Language
dc.contributor.author崔信浩-
dc.date.accessioned2014-01-13T02:06:21Z-
dc.date.available2014-01-13T02:06:21Z-
dc.date.issued1971-
dc.identifier.citation동아문화, Vol.10, pp. 217-231-
dc.identifier.issn1598-0200-
dc.identifier.urihttp://hdl.handle.net/10371/87527-
dc.description.abstract至今까지 箜篌引에 對한 硏究가 많았다. 그러나, 筆者는 旣設과는 달리 箜篌引은 韓國의 歌謠가 아니라, 純粹한 中國歌謠로 보려는 것이다. 그 첫째 理由는 箜篌引의 誕生年代는 旣設처럼, 漢代의 樂府에 屬한 노래가 아니고, 그보다도 훨씬 後代인 晋武帝때 採錄된 相和歌로 보고 싶은데, 이때의 民歌整理作業은 韓半島와는 關係 없이 行해진 것이다. 둘째, 箜篌引은 남의 나라 樂錄에 실려서 傳해진 남의 나라 民歌인데, 굳이 韓國文學에다 隸屬시키려고 한 것은 箜篌說話에 나타난 「朝鮮」이란 地名을 韓半島에다 附會하려는데서 그렇게 된 줄 안다. 그러나 詳考해 보면, 晋代 以前은 勿論이요, 6世紀 以後까지도 直隸省內에 「朝鮮縣」이 存續하고 있었으므로 箜篌說話에 나타난 「朝鮮」은 이곳을 指稱했을 것으로 본다. 더구나, 그 「朝鮮」은 漢土에 歸化해 버린 立場이고 보면, 朝鮮縣의 民歌는 晋代 相和歌로 採錄된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본 것이다. 旣設을 綜合하면 箜篌引의 誕生 年代를 B.C. 108年, 漢四郡 設置 年代에서, 最大限, A.D. 200年으로 보고 있다.-
dc.language.isoko-
dc.publisher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아문화연구소-
dc.title箜葔引異攷-
dc.typeSNU Journal-
dc.citation.journaltitle동아문화-
dc.citation.endpage231-
dc.citation.pages217-231-
dc.citation.startpage217-
dc.citation.volume10-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Center for East Asian Studies (동아문화연구소)Journal of S.N.U. Institute for Asian Studies (동아문화)동아문화 Volume 10 (1971)
Files in This Item:
  • mendeley

Items in S-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