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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위기극복 리더십 연구: '이인좌의 난' 사례를 중심으로
King Yeong-jo’s Crisis Overcoming Leadership: Focused on the Lee In-jwa’'s Rebellion in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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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박현모
Issue Date
2010
Publisher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Citation
한국정치연구, Vol.19 No.1, pp. 147-172
Keywords
위기리더십정치비전 영조이인좌의 난괘서탕평King Yeong-joLeadershipLee In-Jwa's Rebellioncrisis overcomingpolitical vision
Abstract
‘이인좌의 난’은 1728년 3원 15일부터 3월 28일까지 약 보름간 진행된 전국적인 발란으로, 출범할지 얼마 안되는 영조 정권에게 큰 타격이자 도전이어다. 이인좌, 박필현, 정희량 등 비(非)노론계 세력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이 반란은 연이은 기근으로 인해 흉흉해진 민심과 ‘경종독살설’을 등에 업고 충청도와 경기도, 경상도와 전라도 이래를 장악해 갔다. 하지만 오명향 등 관군 지휘부의 주도면밀한 대응과 영조 정권의 적극적인 소통 및 정보통제로 애초 목표였던 지역별 연대를 통한 반정(反正)까지 나가지 못하고 괴멸되었다. 이 논문은 그 동안의 연구를 기반으로 하되, 기존 연구와 달리 주로 국왕 영조의 관점에서 반란이라는 중대한 위기를 극복해 가는 리더십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첫째, 영조는 반란 발발 소식을 듣고 초기에는 반군의 주동자와 규모를 파악하지 못했지만 오광운, 오명응과 같은 비(非)노론 신하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대응을 해 나갔다. 특히 반란군과 같은 당파(소론)이며 친분관계에 있었던 오명항 등을 중용하는 모험을 했는데, 오명항·박문수 등은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반군을 진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둘째, 영조는 반란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 차례 난의 발생 원인이 조정의 잘못, 즉 붕당의 폐단에 있음을 언급하면서, 난 진압 후 초당파적 인재를 등용하는 탕평책과, 온 나라가 한 동포와 같이 화합하고 협력하는 새로운 정치를 이끌어가겠다는 정치비전을 제시했다. 바로 그러한 영조의 인재경영과 비전 제시가 이인좌의 난이라는 중차대한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게 했다.
Lee In-Jwa's Rebellion was one of the most dangerous crises in King Yeong-Jo's regime. The Rebellion was raised by prestigious families such as Lee In-jwa (Yoon Hue's grandson-in-law), Jeong Hee-ryang (Jeong-on's descendant), and Jeong Se-yoon (Jeong In-ji's descendant). They broke out rebellion in the middle and southern area Korea: ChungChong-do, Kyungsang-do, and Jeolla-do simultaneously.
How King Yeong-jo had overcome it? First, he had an adventure which he placed full confidence in his subjects like Oh Kwang-wun[NamIn], Oh Myung-hang[SoRon], and Park Mun-su[SoRon] who could had been his political rivals. Second, he diagnosed in early stage cause of rebellion as the severe political cleavage. He, thus, suggested Grand Harmony policy [Tang Pyong Policy] as a new solution. He promised that he would appoint personnel to positions according to their ability, not the political background. He had tried to inform his new political vision to his people through translating into Korean Alphabet version in every corner of the land. After 15 days he had overcome the rebellion successfully and turned the crisis to chance as a result.
ISSN
1738-7477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90186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Social Sciences (사회과학대학)Institute of Korean Political Studies (한국정치연구소)한국정치연구 (Journal of Korean Politics)한국정치연구 Volume 19 Number 1/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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