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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園治ㆍ興造論』 硏究(1) - 主者論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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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黃琪源; 李曉稙; 具泰益; 全濚玉
Issue Date
1993
Publisher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Citation
환경논총, Vol.31, pp. 112-140
Abstract
「興造論」은 중국 명나라 말기인 1634년에 출간된 計成의 조원이론서인 『園治』의 서론이다. 여기에서 먼저 計成과 『園治』에 대해 고찰해 보자. 計成(Ji Cheng, Chi Ch'eng)의 이력은 『園治』의 앞부분에 수록된 몇 개의 글로부터 밝혀지고 있는 바,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의 이름을 보면 名은 成이고 字는 無否(Wupi)이고, 號는 否道人으로서 『園治』의 원전에는 저자가 計無否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명나라 말기에 활약한 중국의 조원대가로서, 1582년 吳江懸(현 江蘇省 吳江懸)에서 태어났으며 사망 년대는 분명하게 밝혀지고 있지 않다. 그는 40대 이전까지는 강북지방 (현 북경 및 호남·호북성 일대)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화가로서 활동하였다고 한다. 그가 고향 땅인 강남지방으로 다시 돌아와서 주로 양자강 남북 연안에 원림을 조영하면서 조원가로서 이름을 ᄄᅠᆾㅣ기 시작한 시기는 40대 중반 이후로 추정된다. 이때 조영한 주요 정원들은 당대 명사들인 吳叉予를 위한 陵電(현江蘇省 常州市)의東第圈,汪士衡)의 東第圈,汪士衡을 위한 聾江(현 江蘇省 揚州市 儀徵縣)연안의 J嬉園,鄭元勳을 위한 江都縣(현江蘇省揚州市) 성밖의 J影園,阮大誠을 위한 南京의 .石巢園등으로 알려져 있다. 計無否는 이와 같은 조원 실무를 바탕으로 틈틈이 자신의 조원론을 적어두었는데, 그의 재주와 인품에 매료된 國主들과 文士들이 적극적으로 출판을 권유, 1631년부터 준비하여 그의 나이 53세 떄인 1634년에 (圈冶)라는 이름으로 발간한 것으로 추정된다.
ISSN
2288-4459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9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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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Graduate School of Environmental Studies (환경대학원)Journal of Environmental Studies (환경논총)환경논총 Volume 31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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