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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천황제와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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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박진우-
dc.date.accessioned2014-05-28T07:39:06Z-
dc.date.available2014-05-28T07:39:06Z-
dc.date.issued2009-08-15-
dc.identifier.citation일본비평, Vol.1, pp. 20-59-
dc.identifier.issn2092-6863-
dc.identifier.urihttps://hdl.handle.net/10371/91918-
dc.description.abstract일본 근현대사에서 미국은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페리내항은 근대 일본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미국은 자유의 성지이자 모더니즘의 표상으로 이상화되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은 성전이라는 미명 아래 미국을 귀축미영(鬼畜米英)이라 부르면서 혐오와 경멸의 대상으로 상대화하고 사이판옥쇄, 오키나와전투, 가미가제특공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등으로 상징되듯이 일본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비극적인 전쟁을 치렀다. 그럼에도 패전 후에는 미국의 관대한 점령지배와 강화조약으로 국제사회에 복귀하고 오늘날까지 가장 충실한 친미국가로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요시미 슌야(吉見俊哉)도 최근의 연구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미국의 이라크 무력침공 이후 전세계적으로 반미적인 추이가 나타나는 속에서도 일본은 특이할 정도로 친미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일본인의 친미의식은 패전 후 일본의 점령지배에 헤게모니를 잡은 미국의 대일점령정책에서 비롯되어 반세기 이상에 걸쳐 구조화되어 온 것이다.1) 냉전체제 하에서 중국의 공산화와 한반도의 남북분단 이후 공산세력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은 일본의 경제를 부흥시키고
아시아의 개발경제를 지탱하는 중핵으로 삼았다. 그러한 결과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 기지의 역할은 한국과 대만, 오키나와가 부담하게 되고 일본은 경제발전의 중추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고도성장을 계속해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본의 전쟁책임과 전후처리, 그리고 전후책임에 관한 문제는 오랫동안 미국의 양해와 묵인 아래 애매하게 봉인되고, 근린아시아에 대한 역사적인 문제의 청산이라는 과제가 망각되거나 혹은 왜곡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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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language.isoko-
dc.publisher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dc.title상징천황제와 미국-
dc.typeSNU Journal-
dc.citation.journaltitle일본비평(Korean Journal of Japanese Studies)-
dc.citation.endpage59-
dc.citation.pages20-59-
dc.citation.startpage20-
dc.citation.volum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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