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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을 통한 또 다른 일본 되기 : 이승만 대통령의 대일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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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박태균-
dc.date.accessioned2014-06-02T02:29:26Z-
dc.date.available2014-06-02T02:29:26Z-
dc.date.issued2010-08-16-
dc.identifier.citation일본비평, Vol.3, pp. 98-119-
dc.identifier.issn2092-6863-
dc.identifier.urihttps://hdl.handle.net/10371/91975-
dc.description.abstract이승만 대통령의 반일의식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의 재임 기간 동안 강한 반일의식을 표출하였으며, 그의 반일이데올로기는 통치이데올로기의 일환으로도 이용되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재임 시 발언을 보면 단지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반일의식을 표출한 것은 아니었다고 판단된다. 우선 그의 반일의식은 미국의 아시아정책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되었다. 이승만은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의 대아시아정책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갖고 있었다. 일본은 태평양 전쟁 시기 미국의 적대 국가였고, 오히려 한국은 냉전의 최전선에서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미국의 냉전정책에 복무했기 때문에 한국이 미국의 아시아정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의 반일의식은 북한에 대한 고려 속에서도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1959년에 시작된 일본의 북송정책을 전후한 시기 이승만 자신의 발언과 북송정책에 대한 한국정부의 강력한 반발은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북한과 일본의 접촉 및 재일교포들의 북한으로의 귀환은 이데올로기적 전쟁터인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승만은 한국이 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 없다는 인식 하에, 역할 분담을 통한 새로운 파트너십을 추구했다. 일본이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의 파트너 가 된다면, 한국은 안보, 군사적 측면에서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정책 하에서 집단 안보동맹을 추진했고,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파병을 미국에 제안했다. 이렇게 본다면,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시기 이승만의 반일의식은 단순한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나왔다기보다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세계 질서 속에서 한국의 위치를 적극적으로 고려한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일본의 정치인 및 과거사에 대한 발언 속에서도 확인된다. 이러한 실용적인 대일인식은 이미 식민지 시기부터 계속되었던 그의 반일인식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dc.language.isoko-
dc.publisher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dc.subject이승만-
dc.subject냉전-
dc.subject실용적 대일인식-
dc.subject미국의 대일정책-
dc.subject분단상황-
dc.title반일을 통한 또 다른 일본 되기 : 이승만 대통령의 대일인식-
dc.typeSNU Journal-
dc.citation.journaltitle일본비평(Korean Journal of Japanese Studies)-
dc.citation.endpage119-
dc.citation.pages98-119-
dc.citation.startpage98-
dc.citation.volum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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