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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가리무라(束荷村)와 하기(萩) 기행 : 이토 히로부미의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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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한상일
Issue Date
2010-08-16
Publisher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Citation
일본비평, Vol.3, pp. 246-263
Abstract
일본의 한국병탄 100년을 맞이하고 있다. 한 세기 전의 일이지만, 그리고 병탄의 굴레로부터 벗어난 지 65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그 유산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분단돼 있고, 반쪽인 북한은 여전히 식민지 시대의 연속선상에 위치하고 있음이 이를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1910년의 병탄은 지난날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오늘의 역사이기도 하다.
1910년의 병탄 사건을 끌어내면 한국인은 곧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를 연상한다. 그만큼 그는 한국인에게 병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막연하게 그가 한국병탄의 길을 닦았고, 그래서 만주 벌판에서 안중근에 의하여 죽어갔다는 것 이외에 별로 깊이 아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닐지? 그가 어떻게 성장했고, 어떤 일을 했고, 일본 근현대사에서 그의 위상이 어떤 것이고, 19세기 말 20세기 초 동아시아 질서 형성에 어떻게 작용했고, 일본의 한국병탄과정에서 그가 취한 역할이 무엇인지 등등에 관하여 자료를 바탕으로 한 입체적이고도 정확한 이미지가 정립되어 있지 않다.
ISSN
2092-6863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91982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Graduate School of International Studies (국제대학원)Institute for Japanese Studies(일본연구소)일본비평(Korean Journal of Japanese Studies)일본비평(Korean Journal of Japanese Studies) Volume 03 (2010.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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