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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초기 일본 지식인의 기독교 이해 : 명육사(明六社)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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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용덕
Issue Date
2013-08-15
Publisher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Citation
일본비평, Vol.9, pp. 218-233
Abstract
메이지정부는 성립 후 얼마 안 되어 천황권의 확립을 목표로 한 신도(神道)국교화 정책을 내세우려 했다. ‘기독교 사교(邪敎)는 철저히 금지할 것’을 전국에 알리도록 하라는 태정관(太政官)의 포고(1868. 3. 15)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미 이전의 도쿠가와 막부(德川幕府{)가 외국에 대해 문호를 개방하고난 뒤로 기독교도에 대한 공식적인 탄압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기독교에 대해 금지정책을 취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동안 일본에 들어 온 선교사를 통해 기독교는 많이 알려졌고 또 일본인 중에도 개종자가 나타나고는 있던 상황이었다.
태정관 포고 이후 1869년 말 우라카미(浦上)의 기독교도 약 3000명이 체포되었다고 하나 실제로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오히려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하여 조약 개정을 원하는 메이지정부에 대한 서양 국가들의 항의를 불러왔을 뿐이었다. 1872년 5월 태정관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각 부현(府縣) 장관(長官) 앞으로 금교(禁敎) 완화를 지시하였고, 다음 해(1873. 2. 24)에는 이른바 기독교 금지를 고지했던 ‘고찰’(高札, 법령 등을 공지하기 위한 게시판)의 철거를 명하였다. 이는 기독교에 대한 사실상의 허가라고 하겠으나, 메이지정부의 이러한 태도 변화는 국민교화를 위한, 그리고 서양 열강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ISSN
2092-6863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92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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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Graduate School of International Studies (국제대학원)Institute for Japanese Studies(일본연구소)일본비평(Korean Journal of Japanese Studies)일본비평(Korean Journal of Japanese Studies) Volume 09 (2013.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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