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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성천(成川)텍스트' 고찰 : A Study on the Essays about Sung-Choen (成川) Written by Lee-Sang (李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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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미영
Issue Date
2014-02
Publisher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Citation
인문논총, Vol.71 No.1, pp. 217-252
Keywords
이상성천텍스트조선적인 것산촌여정권태Lee-Sangtext of Sung-ChonKorean-nessthe records on the travel of countrysidefatigue
Abstract
이 글은 이상의 성천(成川)텍스트에 관해 재론한 것이다. 이상은 1935년에 폐결핵 치료차 평남 성천으로 약 한달 간 요양을 갔다. 이 경험은 연애, 질병, 가난, 가족과 더불어 그의 삶과 문학에 원체험으로 각인되어 있다. 경성 토박이에 근대주의자인 그에게 성천은 인공, 문명(근대), 도시와는 질적으로 다른, 자연, 산천, 향촌으로서, 일종의 신세계였다. 또한 성천은 보편주의자에 모더니스트 예술가였던 그에게 조선적인 것에 대해 눈 뜨게 만든 계기였다. 성천체험의 첫 기록물인 「산촌여정」에서 성천은 경성에 대비된 자연, 시골에 가까운 반면, 그가 죽기 4개월여 전, 동경의 추운 골방에서 쓴 「권태」에서 그것은 제국의 수도 동경에 대비되어 고국의 산천, 조선의 재래적 삶의 방식이 온존해 있는 곳, 나아가 소박하지만 겸허한 삶이 가능한 곳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동경에서 이상은 동경이 서구도시의 모방태에 불과하고, 경성은 그런 동경의 모방태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즉, 그는 식민지 지식인의 서구적 근대성 추구가 갖는 필연적인 한계를 알게 되어 공복감과 절대권태에 빠지게 된다. 동경에의 환멸감은 이상으로 하여금 성천의 여름날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그 결과가 「권태」이다. 이 글에서 이상이 성천의 모든 것을 권태롭다 말한 것은 반어적 표현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그가 유고산문들에서 성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들과 그리움을 짙게 드러내고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한국모더니즘문학의 최고치를 보여준 이상이, 아시아에서 가장 근대화된 도시였던 동경을 체험한 후, 아이러니컬하게도 조선적인 것의 가치에 눈뜨게 된 것이다. 오랜 가난과 재래의 생활습관,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산천이 어우러진 곳 성천은 이상이 체험한 가장 조선적인 공간으로서, 원숭이처럼 남의 것을 모방하는데 급급해 하지 않는, 자기본연의 주체적인 삶의 모습이 온전히 남아있는 향토였던 것이다. 이런 인식의 변화에는 병세로 인한 죽음의 예감과 인공낙원인 동경에 대한 환멸감 외에도, 쥘 르나르의 과 1930년대 조선화단에서의 조선적인 양화(洋畵) 그리기 붐(boom)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plore, through the analysis of several essays on the experience of Sung-Choen (成川) by Lee-Sang, how an artist of modernism accepts the value of his nationality or local culture. The first essay on Sung-Choen by Lee-Sang is San-Chon-Wyo-Jung (山村餘情) which means the reminders of feelings after traveling the mountain village. In that essay, Lee-Sang described the landscape of Sung-Choen vividly using sensational and urbane metaphors. In it, Sung-Choen means nature or the rural area. Lee-Sang used paradox and irony in The fatigue(倦怠), which is the second important essay on his experience of Sung-Choen, in order to express the depression of his inner mind through the descriptions of Sung-Choen. Lee-Sangs posthumous essays on Sung-Choen reveal many symptoms which indicate that Lee-Sang must have realized the value of Sung-Choen, not only as his homeland and a symbol of Korean culture and Korean-ness, but also as a symbol of humble lives. There were two major causes of this. Firstly, there was the worsening of his condition of pulmonary tuberculosis. Secondly, he had felt deeply disillusioned about imitating modernity after visiting Tokyo. He came to realize that Tokyo was just a copy of London or New York, and Seoul a copy of Tokyo. So he had a new understanding of the meaning of Sung-Choen as his birthland and local culture.
ISSN
1598-3021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92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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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Institute of Humanities (인문학연구원)Journal of humanities (인문논총)Journal of Humanities vol.71 no.1/4(2014) (인문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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