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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일본의 태교지식의 수용과 전개 : 일본 고전 텍스트를 중심으로 : 前近代日本の胎教知識の受容と展開 : 日本古典テキストを中心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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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미숙
Issue Date
2014-05
Publisher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Citation
인문논총, Vol.71 No.2, pp. 247-285
Keywords
태교외상내화이신보유교여성 교훈서
Abstract
본고는 일본 고전 텍스트에 기술된 태교에 대한 기록을 분석하여, 전근대 일본의 태교지식이 중국으로부터 어떻게 수용되고 전개되는지를 고찰해봄으로써, 태교지식이 정치사회제도의 변화와 맞물려 어떻게 변용되는지에 관하여 살펴본 것이다. 일본 최초의 태교지식의 양상은 , , , 의 태교 관련 내용을 인용하여 기술한 (医心方) 권22 제2 「임부수신법」(任婦修身法)을 통해 살펴보았다. 중국 최고(最古)의 산부인과 전문서인 의 태교 관련 기술을 바탕으로 삼고 있는 의 태교 관련 내용의 핵심은, 태아는 3개월까지는 아직 남녀의 성별이 구분되지 않은 상태이고 그 자질도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어머니의 행동과 마음가짐에 따라 성향과 자질과 성별이 변화될 수 있다는 외상내화(外像内化) 사상이다. 이러한 태교관은 이후 에도 시대의 여성 교훈서와 교육서에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전근대 일본의 태교지식에서 주목할 점은 권24 제4 「변녀위남법」(變女爲男法)에 여아를 남아로 바꾸는 여러 방법이 소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남아 선호 사상으로 후대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에도 시대의 여성 교훈서 등에서 직접적으로 남아를 선호하는 기술을 찾아볼 수 없다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태아의 성별을 두고 우열을 가리지 않고 논하지 않는 전근대 일본의 태교관련 기술은 일본 나름의 출산문화를 반영하는 지표로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한 의식의 단초는 섭정⋅관백 정치체제를 배경으로 하는 헤이안 시대의 남녀 선별 선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점은 동아시아 유교문화와 교류하면서도 일본 나름의 문화를 구축해나가는 전근대 일본문화의 일단(一端)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후 태교지식은 에도 시대 때 여성 교훈서와 온나다이가쿠(女大学) 등의 유교적인 여성 교육서 등을 통해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었다. 즉, 전근대 일본에서 태교지식이 확산된 것은 유교의 확산에 힘입은 바가 크며, 태교라는 지식 또한 유교문화권의 산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本稿は、日本の古典テキストにおける胎教関係の記述を分析し、前近代日本の胎教知識が中国からどのように受容され展開されていくのかを考察することによって、胎教知識が政治社会制度の変化と相まってどのように変容されていくのかを考えてみた論である。日本において最初の胎教知識の様相は、、、の胎教関係の記述を引用し著された巻二十二第二の「任婦修身法」を分析し考察してみた。中国最古の産婦人科専門書であるの胎教関係の記述に基づいているの胎教関係の記述の核心は、胎児は「三ヶ月」までは未だ男女の性別が決まっていない状態でありその資質も決っていないため、母の行動と心構えによってその性向と資質、さらには性別も変化できるという「外像内化」思想である。このような胎教観は以後江戸時代の女訓書と儒教的な女性教育書においても確認できる。なお、前近代日本の胎教知識において注目すべきは、巻二十四第四に「変女為男法」が紹介されているのにも関わらず、それが朝鮮時代とは異なり男児を優先する思想として後代にまで繋がっていないという点である。このことは江戸時代の女訓書や女性教育書から男児を選り好む直接的な記述を読み取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点からも確認できる。儒教が要求する女性像を産婦に要求し、よりよい後嗣を女性に産んでもらうという胎教の本質を否定するわけではないものの、胎児の性別の優越を見分けない前近代日本の胎教関係の記述は日本ならではの出産文化を反映する指標として注目すべきであろう。摂政⋅関白政治体制を背景にする平安時代の男女選別の出産文化からその端初は確認できる。このことは東アジアの儒教文化と交流しつつ日本ならではの文化を構築していく前近代日本文化の一端として見ることもできよう。その後江戸時代において中国のやなどに基づいた女訓書や「女大学」などの儒教的な女性教育書が広まることによって胎教知識は社会全般に拡大することになる。つまるところ、前近代日本の胎教知識は日本の古典テキストにおける胎教関係の記述を分析⋅検討したとき、という医書に収められたなどの中国医書の胎教知識を受容し、江戸時代にいたって女訓書と「女大学」などの儒教的な女性教育書を通して広まったということが分かる。このことは前近代日本において胎教知識の拡散は儒教の拡散によるところが大きいということを示しており、「胎教」という知識が儒教文化圈の産物であることを示す指標にもなる。
ISSN
1598-3021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92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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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Institute of Humanities (인문학연구원)Journal of humanities (인문논총)Journal of Humanities vol.71 no.1/4(2014) (인문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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