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

일본적 미의 지층과 가와바타 야스나리
The Japanese Beauty Stratum and Kawabata Yasunari

Cited 0 time in Web of 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Authors
조정민
Issue Date
2015-08-15
Publisher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Citation
일본비평, Vol.13, pp. 74-97
Keywords
Kawabata YasunariJapanthe Beautiful and MyselfJapan’s returnwar defeat and literature가와바타 야스나리아름다운 일본의 나일본 회귀패전과 문학
Abstract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일본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은 1968년의 일이다. 당시 가와바타는 스톡홀름의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美しい日本{の私: その序說)이라는 제목으로 기념 강연을 했는데, 이는 아름다운 일본이 국내외적으로 승인받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가와바타가 그토록 강조하던 아름다운 일본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패전 후의 가와바타는 여러 기회를 통해 일본 미의 전통이나 옛 산하, 고래(古來)의 일본으로 돌아갈 것을 천명한 바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는 패전 후의 상황을 봉합하고 수습하기 위한 일종의 방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고대 일본과 현재의 일본을 직결시키기만 하면 전쟁에 관한 상처와 아픔을 봉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 일본에는 패전에 관한 어떠한 역사적 경험도 각인되어 있지않다. 따라서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간인 고대 일본을 패전 후의 상황에서 새롭게 전유할 수 있다
면, 전쟁 기간은 공백으로 처리한 채 일본 혹은 일본 민족, 일본의 전통이라는 관념을 균열 없이 매끈하게 환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가와바타는 서구 근대문학의 자장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고전 문학에 대해 높이 평가하였고, 여기에 일본적 미의 근원이 잠재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본다면, 가와바타가 전후에 일본적 미에 관해 집착한 것은 전쟁, 혹은 패전에 대한 능동적인 망각과 재건의 행위였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전후 일본사회의 보수화라는 토양 위에 노벨 문학상이라는 상징적인 권위와 가와바타의 화법이 더해져, 아름다운 일본이라는 가상의 현실과 허구적 진실이 점차 뿌리를 내리게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와 더불어 가와바타의 미적 세계관이 지금의 일본 사회에서 정치적 수사 내지 통치 전략으로 폭넓게 원용되고 있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국가라는 자장이나 세계화 국면 안에서 호출되었던 아름다운 일본은 여전히 감성적 공동체 구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Kawabata Yasunari, the first Japanese to be awarded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received the award in 1969. On the occasion, he delivered a commemorative speech Japan, the Beautiful and Myself: An Introduction (美しい日本{の私-その序說) at the Swedish Academy, which was a groundbreaking event that achieved the recognition of beautiful Japan worldwide. What is the beautiful Japan that Kawabata underlined to such a great extent? After Japans defeat in the World War II, he proclaimed to return to the tradition of Japanese beauty, old mountains and streams, and ancient Japan at every occasion. It was a kind of measure available to stitch up and settle the situation after the defeat, in that postwar scars and pains could be patched up as far as a direct link could be built between the ancient Japan and present Japan. The experience of losing wars was not imprinted on the ancient Japan. Accordingly, if the ancient Japan that remained a pure and beautiful time could be wholly
and newly obtained in such a postwar situation, the concept including Japan, Japanese race,
and Japanese tradition could be seamlessly resurrected, leaving the war period vacant. On this
account, Kawabata highly appreciated the classical literature that is distant from the modern Western literature and emphasized the classical literatures inherent essence of Japanese beauty. In this context, it may be that Kawabatas adherence to the Japanese beauty after the defeat was an act of active forgetting and reconstructing in relation to the war or defeat. Meanwhile, it is an undeniable truth that the virtual reality and fictional truth in the beautiful Japan were gradually pervading the postwar conversation, as Kawabatas symbolic authority and narrative were introduced. In addition, it is notable that Kawabatas aesthetic worldview is widely cited in todays Japanese society as a political rhetoric or ruling strategy. Once invoked in the contexts of globalization or nation-state, the beautiful Japan still actively constitutes an emotional community.
ISSN
2092-6863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94482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Graduate School of International Studies (국제대학원)Institute for Japanese Studies(일본연구소)일본비평(Korean Journal of Japanese Studies)일본비평(Korean Journal of Japanese Studies) Volume 13 (2015. 08.)
  • mendeley

Items in S-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