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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 붕당의식의 사회문화적 재생산과 확산 : Sociocultural Reproduction and Spread of Faction Consciousness in the 18th and 19th Century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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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윤민경

Advisor
오수창
Issue Date
2023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조선붕당붕당의식붕당내혼문화한글당론서여성
Description
학위논문(박사) -- 서울대학교대학원 : 인문대학 국사학과, 2023. 8. 오수창.
Abstract
18~19세기 조선의 사족은 붕당, 학파, 지역, 가문 등에 의해 구성된 중첩된 정체성과 의식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18~19세기의 붕당의식은 사족 개개인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정체성 중의 하나로 개개인의 사고와 행동에 투영되어 조선 사회의 모습을 변화시켰다.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 환국과 옥사의 정치적 대격변을 거치며 같은 당색끼리 生死를 함께하는 강렬한 경험을 공유하게 되면서 서인 남인, 노론 소론과 같은 붕당 구성원들은 이전 시기에 비해 강화된 붕당의식을 지니게 되었다. 18세기 이후의 강화된 붕당의식은 교육과 학습을 통해 사족 개개인에게 내면화되었다. 조선에서 붕당이 세습적 성격을 띠게 됨에 따라, 사족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서 붕당을 구성하는 기조에 관한 기본적인 교육을 받음으로써 붕당의식의 기초를 형성하고 특정 붕당 구성원으로서 정치 사회화될 수 있었다.
붕당의식은 사회적 관계에도 반영되었다.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을 거치며 붕당 구성원이 맺는 인간관계는 동일 당색 내부로 축소되어 갔다. 물론 똑같은 노론이나 소론, 남인이라 할지라도 가문에 따라 개인적 성향에 따라 개개인이 지닌 붕당의식의 크기는 제각각이었으므로 붕당을 달리하는 교유의 사례들이 없지 않았으나, 대체로 사족은 동일 당색 위주로 교유하고 혼인하며 붕당에 기초한 인적관계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붕당에 따른 인간관계의 분기는 18~19세기 내부적으로도 시기별 변화가 존재했다. 붕당에 따른 인간관계의 분기는 18세기에 가장 극심하였으나, 18세기 후반 완화되어 경화사족 사이에서는 붕당을 초월한 친밀한 교유의 사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19세기는 중앙 관료 간의 교유에서도 붕당의 영향력이 크게 완화되고 있었다. 19세기 중앙 정계에서 소론과 남인 강경파가 많이 탈락한 데다가, 붕당 대립을 야기했던 정쟁으로부터도 오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 시기와 같은 배타주의에 기반한 붕당의식은 관료들 사이에서 점차 약화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정체성에 기반한 붕당의식은 世傳하고 있었다. 특히 혼인과 같은 사회적 관습의 영역에서는 당색이 여전히 중요했는데, 19세기 말까지도 朋黨內婚 관행이 이어지면서 혼인은 붕당의 정체성을 유지시키고 붕당 구성원을 재생산해 내는 사회적 기반이 되고 있었다.
붕당에 따른 인간관계의 분기가 혼인을 통해 고착되고 장기화됨에 따라 동일 붕당 내부적으로 공유되는 문화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붕당의식의 현상화로서 읽어 낼 수 있는 이 문화적인 요소란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었다. 붕당은 더 이상 재래의 정치 영역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개개인이 경험하는 일상에 투영되었다. 18~19세기 붕당은 당색별로 고유하게 수립된 문화적 상징을 이해하고 이를 창출 및 공유하는 문화적 공동체이기도 했던 것이다.
18~19세기에는 붕당의식을 지닌 주체의 저변도 확대되었다. 일부이지만 사족 여성과 비사족층이 붕당의식의 새로운 주체로 부상하였고, 당론서를 비롯한 정치사 저술들은 한글로도 쓰이고 읽혔다. 東人과 西人, 老論과 少論 같은 누구나 알기 쉬운 단순한 명명의 붕당이 16세기 후반 이래로 약 200여 년간 중앙과 지방에서 연속성을 띠며 이어지면서, 기성 정치의 영역에서 소외되어 있었던 인물들 중 일부가 조선의 붕당에 대해 말하고 조선의 붕당에 대한 글을 읽기 시작한 변화가 생겨난 것이다. 새로운 붕당의식의 주체들이 말과 글을 통해 향유한 붕당 지식의 내용이란 결국 붕당으로 표상되는 조선의 정치와 정치사에 대한 관심에 다름없는 것이었다.
18~19세기 붕당의식의 저변화 현상이 지녔던 또다른 의미는 붕당으로 표상되는 사족 남성의 정치문화에 대한 사족 여성과 비사족층의 모방에서 찾을 수 있다. 붕당이 서로 얽혀 가며 일궈 낸 조선 정치사의 전개 과정은 16~17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대체로 국왕과 관료를 포함한 사족층, 즉 기성 붕당의식의 주체들만이 향유했던 지식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조선 정치사의 서사를 이해하고 그에 걸맞은 붕당의식을 갖추는 일은 상층부의 문화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사족 여성과 비사족층의 지적 열망을 추동하는 면이 있었다.
일부 사족 여성과 비사족층이 새로운 붕당의식의 주체로 부상했다는 사실은 이들의 성장, 특히 정치의식의 면에서의 성장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19세기는 기성 체제 밖을 향하는 정치의식의 성장도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한편에서는 기성 체제 안을 향하는 정치의식의 성장도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면모는 19세기 조선에서 忠·孝·烈, 五倫과 같은 유교적 지배 이념을 사족 여성과 비사족층이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었음을 확인했던 기존의 여러 연구 결과와도 조응한다. 19세기에는 유교적 지배 이념의 체화라는 윤리의식의 면에서뿐만 아니라 붕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의식의 면에서도 사족 여성과 비사족층의 적극적인 모방과 변주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97182

https://dcollection.snu.ac.kr/common/orgView/000000178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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